[방송기술저널] 공영방송의 수신료 인상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수신료로 재원의 일부를 충당하고 있는 KBS와 EBS는 최근 사장이 나서서 수신료 인상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고, 학회와 공동으로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신료 인상을 이야기 하면서 예외 없이 등장하는 것이 표현이 바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이다. 공영방송의 수신료 현실화에 대해 다수가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신료 인상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어 온 이유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불신을 포함하여,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수행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신료 인상을 통한 공영방송 재원의 현실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그 필요충분조건인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공영방송은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공적 책무에 대한 정의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공영방송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행해야 할 공익적 내용의 방송과 활동 등을 공적 책무라고 상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론적 논의에서 ‘공적 책무’의 개념은 다소 상이한 개념이다.
일단 책무성은 기업이나 행정 기관, 조직이 활동 내용과 수지 등에 대해 설명해야 할 책임 내지는 의무를 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명한 한 학자도 공영방송이 갖는 책무성의 형태를 방송사가 공중의 선호 또는 관점에 주목하고 경청하는 것, 공중이 프로그램 서비스에 대해 관점을 표현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교정하도록 채널을 공개하는 것, 그리고 방송사가 공적 재원의 지출, 그리고 서비스의 질과 수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공중을 대신해 의회 또는 의회에 대답할 의무를 갖는 기구가 방송사의 상황을 설명하도록 하는 공식적인 절차라는 측면에서 책무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방송사의 활동을 투명하고 제도적인 조건 하에 설명하는 것이며,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을 판단하기 위한 정보를 내부적으로 또는 외부에 의해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공영방송의 책무성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론적인 측면에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설명책임’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또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규제기관, 이익단체, 수용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공영방송이 자신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평가받는 과정도 포함한다는 논의도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이론적 논의에서 나타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을 판단하기 위한 정보를 내·외부에 ‘설명’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활동에 대해 ‘평가’ 받는 것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신료 인상을 위한 기자회견이나 토론회,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는 단지 이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실질적으로는 공영방송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공적 기능 및 역할이라는 의미가 더 타당할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도 책무(責務)는 직무에 따른 책임이나 임무로, 영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duty, obligation, responsibility, liability, accountability 등에 해당한다. 결론적으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는 공영방송이 수행해야 하는 공적 책임과 기능 및 역할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이 이행해야 하는 공적 책무인 책임과 기능 및 역할은 무엇일까? 국내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즉 공영방송의 역할과 기능 등은 명확히 규정돼 있지는 않다. 공영방송의 기능과 역할들이 사실상 다소 중복적이고 개념간의 관계가 모호하다. 공익성, 공적 책임, 공정성, 다원성, 다양성 등의 개념이 체계화돼 있지 않고 혼란스럽게 규정돼 있다. 이처럼 유사한 개념의 표현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돼 있고,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보니 공적 책무가 매우 추상적으로 제시돼 있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해 공영방송 중심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일하며, 이는 곧 방송의 공공성 개념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공적 책무에서 강조되고 있는 개념인 공익이나 공적 책임, 공정성, 다원성, 다양성 등의 개념과 행위들이 모두 공공성이라는 포괄적 개념의 하위 구성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성 역시 매우 널리 사용되고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공공성 개념은 다양하며 학자마다 다양한 논리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사한 맥락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공익성과 보편성이라는 특성이 그것이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개념과 의미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공간적인 개념이나 공중 혹은 다중을 위한 것, 그리고 공공재의 측면에서도 보편성의 개념은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방송의 공공성에는 기존 미디어에서 관철돼 왔던 공익성의 사회문화적 가치(다원성, 다양성, 공정성, 교육성 등)와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평등하고 지속적인 미디어의 사용 가능성이 포함된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특성에 맞추어 수용자들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의사소통행위 과정의 참여와 접근을 보장하는 수용자 주권이 포괄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익성과 보편성, 수용자 주권성이 공공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하위개념이며 공적 책무를 정의하기 위한 가치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