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MHz 대역 주파수를 둘러싼 방송과 통신의 힘겨루기가 치열한 가운데, 각자의 입장에서 정리해 서로의 폐부를 찌르는 논리전쟁도 더욱 가열되고 있다. 방송은 보편적 미디어 서비스 구현이라는 공공의 측면에서, 통신은 경제적 낙수효과 및 통신기술의 비전이라는 산업적 측면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의 주요 논리인 ‘700MHz 전 세계 통신 활용설’이 주목받고 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활용하고 있으니 대한민국도 해당 주파수를 통신에 활용해야 세계적인 흐름에 도태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700MHz 전 세계 통신 활용설’은 일견 타당한 구석이 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들이 해당 주파수를 통신 서비스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형국이다.
우선 해당 논리에 언급되는 국가들은 대부분 700MHz 대역 주파수 전체를 통신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며, 각 국가별로 통신 활용 용도가 판이한 만큼 더욱 구체적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용으로 활용하고 있더라도 단말기에 들어가는 칩이나 사용 방식 등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또 대한민국은 주파수 효율이 부족한 미국식 디지털 전송방식을 활용하고 있으며, 전 국토의 70%가 전파 도달이 어려운 산악 지형인데다 방송용으로 할당된 228MHz 폭이 다른 국가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방송 선진국인 유럽의 경우 700MHz 대역 주파수는 방송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차라리 주파수의 전 세계적 활용을 언급하려면 60개국 223개 단체가 ABU 서울총회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를 방송에 할당하자’고 발표한 서울 선언문이 더욱 설득력을 가질 지경이다.
이렇듯 ‘700MHz 전 세계 통신 활용설’은 이미 생명력을 잃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최근 연이어 열리는 토론회에서 이러한 논리는 계속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해당 주파수의 할당을 보도하는 언론도 방송의 공공성에 대비해 통신의 ‘전 세계적 활용설’을 대비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답은 하나다. 해당 주파수는 방송에게는 난시청 해소 및 UHDTV와 같은 뉴미디어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주파수지만 통신에게는 여유 주파수이기 때문이며, 통신 할당을 주장하는 진영의 논리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700MHz 전 세계 통신 활용설’의 기원은 무엇일까? 그 명확한 기원은 찾기 어렵지만, 최소한 구심점이 되어준 ‘사건’은 존재한다.
과거로 돌아가 보자. 2012년 2월. 당시는 신정정치의 대명사이자 방통대군이라 불리던 최시중 전 방통위 위원장이 전격 사퇴한 지 2개월이 되어가던 때였다. 당시는 최 전 위원장이 자신의 퇴임을 일주일 남기고 기습적인 700MHz 대역 주파수 상하위 40MHz 폭 분할 할당을 추진해 지상파 방송을 중심으로 엄청난 반발이 벌어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순간, 구 방통위는 문제의 보도자료를 하나 배포했다. 바로 WRC(세계전파통신회의)-12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활용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였다. 그러나 700MHz 대역 주파수는 공식 의제도 아니었으며 일부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의 긴급제안으로 다뤄지긴 했지만 WRC-15, 즉 2015년에 재논의하기로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구 방통위는 교묘한 말 바꾸기로 일부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의 ‘의견’을 WRC-12의 전체 의견으로 둔갑시켜 여론을 호도했다. 700MHz 대역 주파수를 방송에 활용하는 유럽 국가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보도자료인 셈이다.
하지만 ‘거짓 보도자료’의 여파는 강렬했다. 전문지는 물론이고 주요 일간지와 통신사들은 일제히 구 방통위의 보도자료를 믿고 수십 개의 기사를 쏟아 낸 것이다. 바로 이때 700MHz 대역 주파수의 전 세계 통신 활용설이 더욱 강력한 동력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가 잘못된 정부 부처의 보도자료 하나가 무시무시한 후폭풍을 일으키며 2013년 현재,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 전쟁에도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C&K의 주가 조작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외교부가 아프리카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에 투자한 C&K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언론은 기본적인 의심도 없이 충실히 베끼기에만 열중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 C&K를 둘러싼 총체적 사기사건은 정부 부처까지 엮인 황당한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해외 자원 개발 실적이라는 공적과 일부 공직자 개인의 이윤을 위해 외교부가 바람을 잡고 언론은 애먼 투자자들을 속인 공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2012년 2월, 구 방통위는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치 악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