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8VSB, 쟁점은?

[분석] 논란의 8VSB,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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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 최종안 발표로 해당안에 포함된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이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8VSB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해당 이슈가 어떤 파급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분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정부가 8VSB 허용을 통해 어떤 성과를 거두고 싶어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케이블 방송의 디지털 전환 속도가 상당히 느린 상황에서 가입자들을 임의로 나누면 1. 디지털 TV를 보유하고 디지털 상품에 가입한 사람, 2. 디지털 TV를 보유하고 아날로그 상품에 가입한 사람, 3. 아날로그 TV를 보유하고 아날로그 상품에 가입한 사람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정부는 8VSB 허용으로 2번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고화질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한다. 디지털 TV를 보유했기에 직접수신으로 디지털 방송을 시청할 수 있지만, 케이블 아날로그 상품에 가입했기 때문에 디지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8VSB 허용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첫째, 2번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혜택이 돌아갈 수 있지만 3번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시청권 보장이 어렵다는 점이다. 8VSB가 케이블 MSO에 허용되면 3번으로 TV를 보는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TV를 시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아날로그는 MMS가 불가능. 게다가 8VSB 허용이 되면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구분해 방송을 송출해야 하기 때문에 240MHz를 디지털로, 120MHz를 아날로그로 송출한다고 가정하면 아날로그 TV 시청자는 6MHz 기준으로 채널 숫자가 대폭 줄어듬) 그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미래부 8VSB 연구반에서 3번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컨버터를 나눠주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약 450만 정도로 예상되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컨버터를 나눠주는 사업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상파 디지털 전환 당시 450만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컨버터를 보급하는 것도 엄청난 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컨버터가 없으면 3번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시청권이 엄청난 침해를 당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로 보인다. 강조하지만, 컨버터가 아니면 3번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채널 숫자가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진다.

두 번째는 8VSB 허용이 짝퉁 디지털 전환이라는 점이다. 방송산업발전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특혜의 연장 선상이라는 점인데, 실제로 8VSB가 허용되면 2번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굳이 디지털 전환 상품에 가입하지 않고 아날로그 상품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진다. 궁극적으로 완전한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지 않을뿐더러, 고화질에만 매몰된 아날로그 단계에서 케이블의 디지털 정책이 멈출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왜 케이블 MSO들이 주장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디지털 전환에서 강점을 가지는 다른 사업자들, 즉 디지털 전환을 끝낸 지상파는 물론 아예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IPTV와 위성방송에 대한 경계심리가 숨어있다. 케이블 MSO의 입장에서는 낮은 가입비로 인해 광고료와 홈쇼핑 송출료를 주 수익원으로 하고 있는데 최근 IPTV 가입자가 800만을 넘어 900만을 돌파하는 등 유료방송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케이블 MSO의 입장에서는 ‘돈이 들어가는’ 자체적인 디지털 전환이 더딘 속도를 보이며 가입자를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고화질 서비스에 매몰된다 하더라도 짝퉁 디지털 전환인 8VSB 허용을 통해 자사의 가입자를 잡아두자는 전략을 추진 중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일각에서 말하는 ‘디지털 전환의 강점이 고화질뿐’이라는 한계 아닌 한계도 분명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특혜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8VSB 허용은 방송산업발전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전격적으로 추진되는 이유는 정부의 과도한 특혜라는 틀에서 벗어나 설명이 되지 않는다. 특히 개국 2년을 맞이해 내년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종합편성채널은 자사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고화질과 지상파 인접번호가 보장되는 8VSB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케이블 MSO의 ‘고화질 홈쇼핑 채널’에 대한 염원이 일치하며 명백한 특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인기 채널인 지상파의 인접채널에 종편이 들어갈지, 홈쇼핑이 들어갈지는 추후 논란을 예고할 것이다.

다만 확실한 점은, 8VSB 허용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은 당사자인 케이블 MSO보다 종편에서 먼저 나왔다는 점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지상파 디지털 전환 시기의 종편 언론보도와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담합 TF의 사례를 복기하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네 번째는 콘텐츠 시장의 붕괴다. 8VSB는 현 정부의 국정철학인 창조경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콘텐츠의 저가화-무료화, 더 나아가 불법화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짝퉁 디지털 전환이기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다.

다섯 번째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바로 8VSB 자체가 다채널 서비스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지상파 MMS와 상충되는 부분이 발생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보편적 미디어 서비스를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우리는 8VSB의 깊숙한 곳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 현재 8VSB 허용은 정부의 확실한 기조로 보이나, 어떤 방식으로 추진될지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가장 신빙성 있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지상파 FULL HD 20개 채널, HD 20개 채널, SD 20개 채널로 총 60개 채널이 8VSB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고화질 서비스를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한다는 것인데, 이는 지상파 MMS와 비슷한 구조다. 또 여기에 FULL HD 20개 중 1개 채널이 6MHz를 가져가고, HD 1개, SD 1개씩 6MHz 안에 넣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그렇게 되면 (FULL HD 20*6)+(HD/SD 20*6)으로 계산해 총 240MHz가 8VSB로 쓰이게 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기존 60개 채널을 총 360MHz로 사용한 점을 감안하면 120MHz을 절약할 수 있으며 남는 자원은 케이블 UHD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한정된 주파수에 얼마만큼의 채널을 넣을지는 미지수. 단 120MHz이 UHD로 쓰일지, 아날로그 송출용으로 쓰일지 불분명) 이 상황에서 만약 지상파 MMS가 2HD로 현실화되면 재송신 계약상의 문제와 더불어 다채널과 다채널의 충돌이 발생한다. 지상파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다.

또 지상파의 입장에서는 케이블을 비롯한 모든 유료방송 플랫폼의 CPS 산정이 디지털 상품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8VSB로 고화질 미디어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디지털 상품으로 이동하지 않는 한, CPS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폐단도 발생한다. 그런 이유로 지상파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8VSB를 디지털로 이해할 수 없으며, 디지털이라면 CPS 산정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8VSB는 문제가 많은 아이템이다. 하지만 크게 다섯 개의 폐단을 정리하면 위와 같은 결론이 가능해진다. 이런 무시무시한 폐단을 두고도 종합발전계획에 8VSB가 포함되었기에 엄청난 반발이 예상된다. 이미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을 제외한 IPTV, 위성방송 등은 일제히 8VSB를 반대하고 있다.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