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서비스 강화를 위한 방송규제 혁신 방안 토론회의 문제

[분석] 공공 서비스 강화를 위한 방송규제 혁신 방안 토론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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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발표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긍정적인 미디어 환경 구축을 위한 ‘공공 서비스 강화를 위한 방송규제 혁신 방안 토론회’가 11월 25일 국회 의원회관 5간담회실에서 열렸다. 하지만 정부의 방송정책 철학 부재를 지적하는 토론회 본연의 목소리가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것과 별개로, 현실적인 대안을 도출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토론회였다.

   
 

우선 해당 토론회가 11월 14일 정부의 계획안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걸며, 당시 등장한 계획안이 미래부의 안건이라는 성급한 전제를 아무 문제의식 없이 넘겨버린 부분은 지탄받아야 한다. 11월 14일 정부의 계획안 발표가 있던 날, 정부는 본 계획안이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가 합의해 발표한 안이라고 분명히 발표했다. 그런 이유로 해당 자리에서 유료방송 중심의 계획안이 등장하자 패널로 참석한 강혜란 여성민우회 정책위원은 “방통위와 합의한 안건치고는 상당히 유료방송 편향적이다”는 발언까지 한 바 있다. 그런데 다음날인 15일, 이경재 방통위 위원장은 전체회의 발언을 통해 해당 계획이 방통위와는 협의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며, 뒤이어 미래부에서는 이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협의가 된 사항인데 막상 계획안이 발표되자 반발이 심해 방통위가 발을 빼는 것이든, 아니면 정말 방통위가 협의단계에서 미래부에 배제되었든 사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정부 부처의 혼선과 불통이 상당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불협화음은 전적으로 정부부처의 잘못이다. 그런데도 11월 25일 열린 토론회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은 전혀 없이, 그저 “14일 계획안은 미래부의 것이다”는 전제만 서둘러 깔고 시작해 버렸다. 이런 전제를 서둘러 깔아놓은 상태에서 지상파 측 인사가 “14일 정부 계획안이 유료방송 중심으로 진행된 부분이 문제다”고 발언을 하자 “14일 계획안은 미래부의 의견이며, 미래부는 유료방송을 관장하는 부처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고 말하는 부분은 무책임한 발언일 뿐이다. 방송정책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논쟁과 소통을 위해 뛰어야 하는 미래부와 방통위의 불협화음을 서둘러 무시하고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는 25일의 분위기는, 대안으로서의 토론회 성격이 시작부터 삐걱거림을 의미한다.

8VSB 허용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11월 25일 토론회에서 단연 화두는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인데 지상파 MMS와 상충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지상파 플랫폼의 근간을 위협하는 내용까지 짚은 것은 커다란 성과다. 하지만 11월 14일은 물론, 25일 토론회에서도 8VSB라는 아이템에 대한 정당성을 따져보지 않은 것은 패착이다.

우선 14일 토론회부터 보자.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에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이 들어가야 하는가? 단연코 아니다. 속칭 대안언론이라는 곳에서 14일 정부의 계획안 발표 이후 이해 당사자들의 이전투구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평가한 부분은 정당하다. 하지만 8VSB 허용은 다른 아이템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방송산업발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DCS 및 기타 아이템들이 일정 정도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가지며 경제적-문화적 가치를 창출하지만 8VSB는 단지 ‘선물 보따리’일 뿐이다. 왜일까?

8VSB 허용은 케이블 MSO(혹은 종편)에 대한 특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TV를 보유한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에게 고화질 화면을 쉽게 서비스한다는 대의명분도 진정한 디지털 전환과 거리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8VSB와 비슷한 클리어쾀 TV를 살펴보자. 1994년 미국 FCC는 클리어쾀 TV를 업계 자율화로 개방했다가 2011년 케이블 업체의 반대로 결국 기본채널의 암호화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바 있다. 이는 200여 개의 방대한 채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20~30개 채널을 가진 저가의 클리어쾀 TV로 유입되어 콘텐츠의 가격 하락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방향 서비스가 불가능한 클리어쾀 TV의 특성상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을 차치한다고 해도, VOD 서비스를 통한 투자의 선순환 구조도 막혀버리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감이 오는가? 8VSB 허용은 클리어쾀 TV와 같이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를 고화질로 구제하기는커녕 짝퉁 디지털 전환의 틀로 묶어버리며 콘텐츠 시장의 붕괴까지 야기시키는 아이템이다. 현 정부의 창조경제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아이템을 방송산업발전으로 묶는 용기가 가상할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11월 25일 토론회에서 8VSB라는 아이템을 14일 토론회의 연장 선상에서 갑론을박한 부분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당시 한상혁 케이블TV협회 미디어 국장이 “8VSB는 디지털 전환으로 가는 과도기에서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 등장한 하나의 방안”이라고 언급했을 때 미국의 클리어쾀 TV 사례처럼 아날로그 케이블 상품 가입자들을 반쪽짜리 디지털 전환의 유리벽에 가둔다는 지적을 했어야 했다.

또 한 국장이 8VSB 허용은 종편만의 특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을 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부터 흘러나온 종편 로비설과 그 실체가 드러난 종편 4사 담합 TF의 존재를 언급했어야 했다. 유료방송의 8VSB 허용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케이스임을 밝히며 홈쇼핑 채널과의 채널구성이 변수지만 지상파와 종편이 인접대역에 묶일 가능성이 높다는 부분도 확인했어야 했다. 더 나아가 14일 정부의 계획안에 8VSB 허용이 포함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로 25일 대안 토론회가 이러한 점을 부각시켜야 했다.

하지만 당시 토론회 참석자들은 8VSB 허용에 대한 근시안적 결론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대안을 도출시키지 못했다. 25일 토론회 말미에 사회를 맡은 김민기 숭실대학교 교수는 “이번 토론회에서 확실한 비전을 찾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토로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한 번의 토론회로 모든 것을 잡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 원초적인 단초는 25일 토론회 스스로가 자초한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