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할당전쟁, 명칭을 선점하라

[전망대] 주파수 할당전쟁, 명칭을 선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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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 국회와 언론사를 돌며 방송통신 전문 기자들을 두루 만나고 술 한잔에 함께 신세 한탄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때. 밤 11시가 거의 다 되어 집 앞 골목길에 접어드는 순간 MP3로 변신했던 휴대폰이 찌르륵 울린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눈으로 보니 모 일간지 기자. 증권가를 출입하다가 최근 방송통신 및 IT로 전공을 바꿨다는 그는 전화를 받자 마자 낮의 격렬한 토론장에서 오간 주파수 이야기를 꺼낸다. 혀가 잔뜩 꼬인체로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늘어놓는 그. 하지만 모르는 것은 필자도 마찬가지기에 기술인연합회 막내기자로서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은 다 알려드렸다며 정중하게 전원 버튼을 껐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 기자의 마지막 말이 머리속을 맴돈다. ‘여유 주파수’라는 말. 단지 술에 취해 머리가 흔들린것은 아니리라.

LTE 주파수 할당전이 오는 8월 무조건 끝남에 따라, 벌써부터 부지런한 이들 사이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 이야기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동시에 UHDTV 및 난시청 해소를 위해 해당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방송의 목소리와 통신기술의 발전 및 데이터 트래픽 해소를 이유로 해당 주파수의 할당을 원하는 통신의 반박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방송통신위원회가 700MHz 대역 주파수 108MHz폭 중 이미 상하위 40MHz폭을 할당했으며, 이것이 방통위원장 고시로 확정되지 않은 모순의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각자의 진영에서는 상대의 논리적 헛점을 파고들어 상처를 후비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 이르러, 통신의 해당 주파수 할당 논리를 차치하더라도 방송의 주파수 할당 논리가 더욱 탄력을 받는 것은 부동의 사실이다. 이러한 부동의 사실이 흔들리는 일이 있다면 이는 지극히 현실정치의 파워게임이 그대로 주파수 할당전에 대입 되었다는 뜻이며, 대한민국은 미디어 공공성의 제 1가치를 잃어버릴 위기에 빠지게 되리라.

그러나 논리는 이길지 몰라도, 최소한 방송은 명칭의 패러다임에서는 패배했다.

700MHz 대역 주파수를 부르는 수식어는 황금 주파수부터 시작해 다양한 편이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해당 주파수는 많은 언론으로부터 ‘여유 주파수’라 통칭되기 시작했다. 아, 언론 뿐이랴, 실제로 각종 방송은 물론 학계와 시민사회 관계자들도 700MHz 대역 주파수는 ‘여유 주파수’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 기계적인 명칭에 숨겨진 함정은 꽤 치명적인 편이다.

처음 여유 주파수라는 명칭은 정부를 중심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명칭 패러다임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기 어렵다. 말 그대로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된 직후 ‘여유로운 주파수’가 생겼다는 지극히 단순한 의도로 해당 명칭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칭을 대부분의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통신의 입장에서 해당 주파수의 할당전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명칭이 바로 ‘여유 주파수’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원래 700MHz 대역 주파수는 방송이 활용하던 부분이다. 그런데 디지털 전환 이후 해당 주파수가 ‘확보될 가능성’이 생기자, 이 주파수를 가져가고 싶어하는 통신은 ‘여유 주파수’라는 훌륭한 의미를 부여한다. 왜냐. 애초에 방송이 활용하던 자원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면 우선 그 자원을 상대방으로 분리시켜 제3자로 환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즉, 700MHz 대역 주파수와 방송의 연관성을 완전히 분리시켜, 온전히 ‘어디든 활용되어야 하는 여유로운 주파수 자원’으로 정의내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여유 주파수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방송은 졌다. 물론 주파수 쟁탈전이 아이들 컴퓨터 게임처럼 누군가가 이기고 지는 단순한 놀이는 아니라 할 지라도, 최소한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명칭정리부터 확실히 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보라. 700MHz 대역 주파수는 필수 주파수가 아닌, 여유 주파수로 불리며 철저히 방송과 분리되어 논의되고 있다.

 물론 지상파 일각에서는 여유 주파수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필수 주파수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힘은 미약할뿐더러 포인트가 약간 어긋나 있다. 이들은 해당 주파수가 필수 주파수인 이유를 ‘방송에 반드시 필요해서’라고 필수 주파수라 부르고, 그 반대로 통신은 해당 주파수가 별로 필요하지 않으니 ‘여유 주파수’라고 부르는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애초에 방송과 해당 주파수를 분리하자는 발상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심해라. 해당 주파수는 분명히 ‘방송’이 활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물론 방송이 사용한다고 천년만년 방송이 활용하라는 법은 없다지만, 최소한 명칭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들의 우위를 지키는 노력이 반드시 있었어야 했다.

최근 재송신료 협상 및 지상파 플랫폼 사업에 있어 방송기술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군, 즉 PD나 기자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 공공성의 전사들은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그릇이 어떻게 되든 자신들의 콘텐츠만 훌륭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관념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환상일 뿐이다. 왜 종합편성채널이 8VSB를 허용하고자 하는지, 왜 CJ가 CJ 특별법을 주장하고 있으며 왜 KT가 DCS를 허용받으려 하는지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은 맨 처음 품은 의문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700MHz 대역 주파수가 왜 여유 주파수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