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MHz 대역 주파수 해법, 외국만 찾는 ‘저명한’ 학계 인사들

[칼럼] 700MHz 대역 주파수 해법, 외국만 찾는 ‘저명한’ 학계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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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을 두고 방송과 통신이 오랜만에 격돌했다. 6월 10일 미래창조과학부가 통신사의 과도한 트래픽을 보여주는 자료를 타이밍 좋게 발표한지 2일 후, 6월 12일 전국 지상파 TV 디지털 전환의 후속조치로 인해 전라권을 시작으로 하는 3권역 채널재배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가운데 같은날 정보통신정책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통신학회는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심포지엄을 통해 각자의 논리로 첨예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물론 700MHz 대역 주파수는 그 자체로 방송과 통신의 대격돌을 야기할만한 아이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 심포지엄에서는 공익적 가치와 더불어 경제적 파급력과 사회적 의미, 여기에 정치적 해석까지 망라하는 다양한 근거와 배경이 방송과 통신의 할당을 주장하는 학계 인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모바일 트래픽,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 세계적 추세, 주파수의 공공성, UHDTV 및 난시청 해소, 현 정부의 주파수 분할 정책, 통신기술의 발달, 방통위원장 고시, 주파수 알박기, 방송과 통신의 공익성, 그리고 주파수의 궁극적인 정의까지. 심포지엄은 그 자체로 치열한 전쟁터였다.

그런데 본 심포지엄에서 여지없이 등장한 통신할당 당위성의 한 축, 바로 “700MHz 대역 주파수의 세계적 흐름”은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남긴다. 물론 “외국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를 대부분 통신에 할당한다”는 논리는 해당 주파수의 통신 할당을 주장하는 진영이 포기할 수 없는 무기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유난히 병적으로 세계화, 지구촌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솔깃해하는 부분이니까. 우리는 가장 대한민국다운 것조차 세계화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면 성질이 차지 않으니까. 이런 논리는 꽤 치명적이지만 효과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속된 말로 ‘팔리는 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해당 주파수 논쟁에서 이제 “외국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를 대부분 통신에 할당한다”는 논리는 이미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갈라파고스를 운운하며 겁을 주지 않아도 해당 논리는 벌써 힘이 다 빠졌다는 뜻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상황’을 알아야 한다.

해당 주파수의 통신할당을 주장하는 이들은 700MHz 대역 주파수가 전 세계적으로 통신에 할당되고 있으니 당연히 세계화의 추세에 맞게 대한민국도 이러한 뜻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각국의 사례와 WRC-07 결과 등이 나온다.(WRC-12는 애매해서인지 안 나온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해당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하는 그 대단한 외국, 아니 ‘선진국’은 대부분 주파수 전송 방식이 대한민국보다 훨씬 효율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러니 외국은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해도 -일단 그렇다고 해두자- 방송에 커다란 타격이 없다.

그러나 이 대목에 이르러 해당 주파수의 통신 할당을 원하는 이들은 입을 닫아 버린다. 게다가 이들은 디지털 전환 이후 대한민국은 방송에 228MHz폭만 활용한다는 특수성도 눈을 감아버리고 있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이 300MHz폭을 방송이 활용한다는 예외도 외면한다. 여기에 지형은 또 어떤가. 대한민국은 70%가 산악지형이며 덕분에 고대 삼한시절부터 각 지역별 수 십개의 나라가 난립했던 역사가 있다. 당연히 주파수가 도달하기에는 어려운 지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다 무시한다. 개인적으로는 일부러 그러는것 같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해당 주파수의 통신 할당을 주장하는 이들은 외국도 해당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외국과 다른 대한민국의 특수성은 부정하고 외면한다. 2004년 수상쩍은 정부의 결정으로 디지털 전송방식은 주파수 소모가 크며, 방송이 활용가능한 228MHz폭도 턱없이 부족한 점. 여기에 전체 지형의 70%가 산악지형이라는 부분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는 이제 완전히 힘을 잃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차라리 본 심포지엄에서 나온, 어쩌면 색다른 주장인 “통신도 공공의 영역이다”는 논리가 더 훌륭하다고 본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공과 개인의 차이에 대한 할 말이 있지만 어설픈 세계화 따라잡기보다는 아예 이런 파격적인 논리가 더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심포지엄에 나온 몇몇 ‘저명한 학자’들은 여전히 죽어있는 논리에 기대어 앵무새같은 말만 했다. 세계화라는 말이 무조건 좋아 보이니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인가. 말이 되지 않는다. 엄연히 다른 특수성이 있는데 왜 그걸 무시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것인가.

속된 말로 축구를 보라. 해외 선진 축구가 스페인식의 ‘티키타카’ 축구를 추구한다고 우리가 그걸 무작정 대한민국 대표팀에 대입하면 태극전사들이 순식간에 세계 챔피언이 되나. 이견의 여지는 있겠지만 대한민국 축구는 대한민국 축구만의 색깔이 있고 특수성이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 축구는 티키타카처럼 세련되지는 않지만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의지로 세계의 강호들을 상대로 멋진 승부를 펼쳐왔고 지금도 그 혼을 이어가고 있다. 상황이 다른데도 세계화를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뜻이다.

어차피 주파수 문제는 기회비용이 포인트다. 어설프게 세계화 운운하며 말장난하지 말고 해당 주파수의 활용을 산업적인 판단 외 사회, 문화, 여기에 공공의 차원에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핵심은 이거다. 주파수라는 자원을 어디에 주는 것이 좋을까? 개인 사업자지만 아주 약간의 공공성도 가진 통신 사업자들이 산업을 발전시키고 데이터 트래픽을 해소하는 것에 쓸까? 아니면 UHDTV 및 난시청 해소를 위해 더욱 대중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물론 주파수 활용에 대한 세부계획은 반드시 있어야한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둘 점은, 이제 이러한 물음표에 ‘외국의 사례’나 ‘세계화’는 더 이상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