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종합편성채널 사장단을 만나 8VSB 허용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다. 동시에 미래창조과학부도 연구반을 가동해 8VSB와 관련된 정책을 준비하고 있어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케이블과 그 내부 종편의 전면적인 8VSB 허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혜’라는 거대한 담론 안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따져봐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디지털 방송 변조 방식은 지상파가 8VSB, 케이블이 쾀(QAM)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 케이블은 지상파 8VSB 디지털 방송 신호를 그대로 보내주는 방식이다. 즉 870MHz 망에서 채널당 6MHz씩 디지털 지상파 채널에 할당한다는 뜻이다. 나머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채널은 모두 쾀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블 업체의 스탠스는 문자 그대로 ‘묘하다.’ 2012년 12월 31일 오전 4시를 기해 전국 지상파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고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를 맞이했지만 케이블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더디기만 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기준으로 약 900여 만의 케이블 가입자가 아날로그 상품에 머물러 있으며 이러한 수치는 전체 케이블 가입자의 60%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홈쇼핑 채널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케이블은 무조건 ‘디지털 전환율’을 사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담이지만 이런 위기감이 클리어쾀 TV 논란을 빚은 것이다.)
물론 2015년까지 완벽한 디지털 전환을 이루겠다고 천명하는 한편, 클리어쾀 TV 도입 및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의 ‘유료 방송 지원 특별법’을 등에 업고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양분삼아 도래하는 디지털 시대를 잡아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마저도 같은 유료 방송인 IPTV에 비해 별 소득은 없는 상황이다.
국내 700만 가입자를 끌어 모으며 KT IPTV의 VOD 매출이 전체 SO의 매출을 압도하는 상황이 도래한 만큼, 케이블의 디지털 전환은 그 상징적 가치를 넘어서는 생존의 문제인 셈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케이블은 8VSB로 눈을 돌렸다. 지상파 방송사에 허용되는 8VSB 방식을 케이블에 허용하게 되면, 디지털 TV를 보유한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에게 단번에 HD 화질의 영상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모든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되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클리어쾀 TV와 비슷한 문제가 있다. 바로 ‘반쪽짜리 디지털 전환’이라는 오래된 비판이다. 클리어쾀 TV가 단순히 내장형 칩을 활용해 디지털 TV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구조인 것과 같이, 8VSB의 케이블 허용도 당장 고화질의 영상을 제공할 수 있지만 양방향이 불가능한, 명백한 ‘반쪽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니 사실 내심 다른 이유로 케이블 내부에서도 8VSB 허용은 찬반이 명확히 갈린다. 특히 일정정도 투자를 실시해 디지털 전환을 완료한 케이블 SO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진정한 디지털 전환이 아니다’는, 얼핏 보면 지상파 방송사와의 주장과 비슷하지만 실상은 이미 집행해버린 디지털 전환에 따른 비용문제에 속이 쓰린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물론 다른 이유도 몇 가지 있겠지만, 이는 애초에 케이블의 전송방식을 정하는 역사까지 뒤져야 함으로 본 고에서는 생략한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8VSB 허용에 대한 문제는 디지털 전환에 몸이 달아버린 케이블도 의견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종편이 8VSB 허용을 주장하고 나왔다. 동시에 상황은 복잡해졌다. 여기서 상상해보자. 만약 케이블 전체에 대한 8VSB 허용을 정부차원에서 추진한다면 사안은 단순하지만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그것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세계 방송의 흐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원론적인 논쟁들이 충돌하는 한편, 중소 PP의 경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케이블 SO의 집단행동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종편에만 8VSB를 허용하는 것도 문제는 심각하다. 이는 명백한 특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현재 방통위는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위를 늘려 KBS2를 포함시키는 한편, 일회성 수신료 현실화를 통해 KBS의 불만을 누르고 그 광고료 파이를 유료 방송에 흘러가도록 만드는 음모아닌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종편에 8VSB 허용과 더불어 광고료 재원까지 연결되는 특혜의 2연타가 그려지지 않는가. 케이블의 정해진 의견통일도 없는 상황에서 궁극적인 디지털 전환을 무시하는 종편 8VSB를 허용하고,(그 범위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동시에 막강한 재원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려 한다는 의심은 단순한 비약일까.
최근 방통위는 종편의 선거방송 허용을 시사하는 뉘앙스를 풍기며 관계자들을 아연질색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법적 투쟁 끝에 조만간 ‘종편승인자료’라는 거대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전망이라고 한다. 바로 이 즈음해서, 종편에 대한 타깃형 특혜는 광고료와 8VSB 허용이라는 이름으로 은근히 고개를 들고 있다. 짙은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