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얼핏 복잡해 보이는 질문이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해 해당 서비스를 온전한 플랫폼으로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에 그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즉, 정리하자면 좋은 콘텐츠와 플랫폼을 활용해 훌륭한 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상파 방송사의 소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 우리는 지상파 방송사의 절대적인 소명들이 사상 초유의 막강한 도전에 직면했음을 알고 있다. 우선 지상파 방송사의 소명 중 콘텐츠에 대한 도전은, 작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방송사 총파업의 형태로 체험할 수 있었다. 정부의 언론장악을 거부하고 쓰러진 공정방송을 복원하기 위한 노조의 투쟁이 지상파 방송사의 소명 중 하나인 콘텐츠와 관련된 핵심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다싶히 지상파 방송사의 소명은 콘텐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에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깊숙히 들어가자면 옛날부터 존재하던 이공계 홀대 정서까지 파고 들어가야 하는 이 민감한 문제는, 심지어 방송사 구성원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치명적이고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나서 냉정하게 외면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처럼, 기껏 자신의 식당에서 심혈을 기울여 음식을 만들고 나서 그 음식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콘텐츠를 담아내는 플랫폼도 중요한 지상파의 소명이라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똑똑한 아이를 낳고 다른 곳에 입양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남의 식당 그릇에 올려도 ‘어차피 내가 만든 음식이니까 상관없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방송사 직원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보가 분명하다.
그런데 지상파의 콘텐츠 적 소명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로 2012년이 한껏 시끄러웠다면, 시작되는 2013년 한 해는 또 다른 중요한 소명인 플랫폼에 대한 위기감으로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단초는 명확하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유료 방송 플랫폼 육성 정책과 맞물려 지상파 방송사 플랫폼에 대한 파상공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상 공세는 지상파 의무재송신 현안을 계기로 더욱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 재송신료 분쟁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며 지상파 의무재송신 대상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당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지상파 의무재송신 논의와 둘러싼 로비와 압력이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지기도 했고, 최근에는 유관 외곽단체 및 조직적 대응의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논리는 취약하기 그지없으며 더 나아가 명백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분위기를 지상파 방송사 내에서도 쉽게 잡아내지 못한다는 부분이겠다.
유료 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윤 추구’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의무재송신 범위를 확대시켜 무료로 지상파 콘텐츠를 받고 나머지 재송신료도 낮춰 자사의 이득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기존 CPS 방식의 재송신료를 거부하고 ‘합리적인’ 산정 대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제대로된 미디어 환경 구축을 위한 지상파 방송사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