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HBO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칼럼] 넷플릭스와 HBO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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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TV 시청 환경이 변하면서 이제 미디어를 즐기는 방법은 확연한 경계선을 기준으로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분위기다. 하나는 전통적인 TV 시청환경에서 기인한 UHDTV 및 3DTV 등 국내 제조사를 중심으로 붐이 일고있는 대형화 실감방송 시청행태와 다른 하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N-스크린 등의 이동형 스마트 시청기기의 등장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제 단순한 시청률 집계는 조금씩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젠 프로그램 몰입도를 측정하는 시대가 아닌가. 물론 전통적인 TV 시청 가구가 사라지며 방송사의 영향력 상실을 기정사실화 하는 다소 성급한 진단이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SBS 드라마 모래시계가 귀가시계가 되는 현상은 빛 바랜 추억 속 이야기로 사라질 전망이다.

변하고 있다. 스마트 기기의 등장으로. 무엇이? 미디어를 즐기는 모든 것이.

동시에 새로운 시청형태의 등장, 즉 TV앞에 진득히 앉아 두근대는 마음으로 시청 시간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조금씩 사라지며 방송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사용자가 변하면 공급자도 변해야 하는 것이 시장 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콘텐츠 제공 사업자나 플랫폼 제공 사업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새로운 시청형태의 등장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변신을 시도해야 할 순간을 느꼈다. 각 방송사들이 모바일 생태계를 기반으로 하는 N-스크린을 연달아 출시하고 각종 뉴미디어에 선제적인 대응을 취하는 이유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미국의 넷플릭스와 HBO가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먼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원래 DVD를 대여하는 회사였으나 2009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해 인터넷만 되면 스마트 기기 및 TV, 컴퓨터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원시적인(?) DVD 플랫폼 회사에서 어엿한 유료 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된 셈이다. 물론 방송 플랫폼이라고 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들은 세상에 등장한 대부분의 IT 기능을 가입자에게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 매출이 4조 원대에 이른다고 하니 넷플릭스의 성공은 실로 화려하고 대단한 실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다음 TV의 롤모델이 넷플릭스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가 자신의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순차적 공개가 아닌 일시 공개로 출시해 관심을 끌고있다. 즉 엄청난 드라마 유치 투자(2시즌 26화에 총 1억 달러 투자, 1편 당 우리 돈으로 1~2억 원)로 끌어온 킬러 콘텐츠를 전통적인 방식의 순차적 공개가 아닌 일괄공개로 가입자에게 제공한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온라인 스트리밍 시대의 시청자들이 주말이나 심야에 긴 드라마도 한 번에 몰아서 보는 일명 ‘폐인 시청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즉 넷플릭스는 자사 가입자들의 시청행태를 ‘몰아보기’라고 결론 내리고 그에 걸맞는 킬러 콘텐츠를 시청 유형에 맞게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 HBO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케이블 네트워크 기업이자 최고의 드라마 왕국으로 불리며 1972년부터 항상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은 대표적인 유료 방송사다. 그런데 1,00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한 이 거대 기업이 최근 미디어의 붕괴를 예언하며 ‘전통적인 미디어 시대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라고 주장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HBO는 최근 “전통적인 TV 시스템에 의한 정보공유 방식에서 점진적으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미디어들이 힘을 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며, “앞으로 미디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중요한 키 전략으로 좋은 컨텐츠와 이를 바탕으로 한 소비자들의 좋은 기억들 (Good positioning strategy)에 대한 것에 방점을 찍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콘텐츠 및 플랫폼 제공에서 벗어나 주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미디어 아이템으로 사업의 방향을 설정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변화하는 시청자의 태도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표출될 것이다.

 

   
 

넷플릭스와 HBO는 공영방송이 아닌 유료 방송 회사다. 하지만 이들이 변화하는 시청자의 시청행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은 감탄을 넘어 찬사를 던지게 만들어 준다. 물론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이러한 능동적인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콘텐츠와 플랫폼이 자기 복제를 끊임없이 이어가며 더욱 놀라운 융합기술들이 대세를 이루는 지금, 시청자는 이미 변할 준비가 되었다. 이제 제공자가 변할 때다.

참고로 넷플릭스와 HBO는 광고료가 아닌, 가입자가 납부하는 금액으로만 운영되는 곳이다. 그리고 적당하게 책정된 그들의 납부액은 두 회사가 탄탄한 콘텐츠와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능동적인 변화도 그들의 탄탄한 재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스웨덴 공영방송이 스마트 기기에도 시청료를 부과하는 요즘, 국내의 방송 수신료 및 기타 논의에도 어느 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