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VSB 논쟁에 숨은 방송 기술의 공공성 실종

8VSB 논쟁에 숨은 방송 기술의 공공성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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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 선거가 보수 정권 재창출로 결론이 나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종합편성채널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벌써 민주통합당 및 야권 정치인을 비롯해 포괄적 범위의 진보 세력 인사들에 대한 막말 수준의 비판을 퍼부으며 존재감을 잔뜩 과시하고 있다. 그중에서 채널 A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박종진의 쾌도난마에서 ‘정치권에 기생하는 진보진영 5대 선동가’를 꼽은 것은 화룡점정이라 하겠다. 중장년층의 ‘나꼼수’로 탄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종편을 중심으로 케이블 사업자들이 지상파 방송 전송방식인 ‘8VSB’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지상파 전송방식인 8VSB를 케이블에 도입하라는 목소리가 있었으며 작년 11월 17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2012 한국방송학회 학술대회’를 통해 학계의 뜨거운 화두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종편은 자사의 방송과 신문 지면을 통해 연일 관련 기사와 사설을 쏟아내며 여론몰이에 안간힘이었다. 심지어 2012년 12월 31일 전국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 당시에도 채널 A는 뉴스 리포트를 통해 8VSB 도입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김희경 미디어전략연구소 박사의 인터뷰를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속도를 내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안팎에서 묘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종편이 케이블 8VSB 도입을 위해 벌써부터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는 ‘설’이다. 당장 차기 정부 인수위 고위 관계자와 종편 관계자가 사전교감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대선이 끝나면 차기 정부 인수위에 수많은 이익단체가 몰리는 것이 일종의 관례라고 하지만, 그 주체가 편파적 방송으로 이름을 떨치며 정권 재창출에 어느 정도 힘을 보탰다고 여겨지는 종편이기에 쉽게 무시할 소문은 아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여전히 8VSB의 케이블, 특히 종편 적용에 부정적이다. 전 세계 최초 유료 방송 지원 특별법이 등장한 가운데 8VSB마저 세계 최초로 케이블, 특히 종편에 허용하는 것은 자칫 심각한 방송 산업 불균형을 초래할 뿐 아니라 다른 중소 PP와의 형평성과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디지털 전환의 보편적 혜택을 클리어쾀 TV나 8VSB 방식 허용으로 이끌어내는 것보다 ‘무료 보편의 시청권 보장’ 차원에서 도출하는 방안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최홍재 새누리당 100%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위원, 변희재 미디어워치 발행인 등 종편 개국 당시 힘을 보태며 ‘산파’ 역할을 자임했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들이 현재 집권 여당과 차기 정부, 그리고 종편 등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들이 종편의 8VSB를 비롯한 각종 특혜 논란의 정점에서 활동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한 특혜 논란에는 의무재송신 채널에 속해 있으면서도 종편이 케이블 SO에게 수신료를 요구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종합하자면, 차기 정부의 논공행상에 8VSB, 수신료 납부 등 종편 특혜가 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현재 인수위는 18대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시켜 신설하는 방안을 가장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에 영향을 받는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 2개 부처와 2개 행정위원회가 어떻게 새로운 부처에 녹아드는가에 있다. 새로운 부처의 성격이 과학기술부 부활을 바탕으로 하는 연구 조직으로 가닥이 잡히느냐, 아니면 IT 발전의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전사적 행동 조직으로 가닥이 잡히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지식경제부의 R&D 사업 기능을 신설 부처가 얼마나 가져오느냐도 변수로 꼽힌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박 당선인의 중요 공약이던 ICT 전담 부서를 신설 부처 내부에 두느냐, 아니면 독임부처제를 원하는 ICT 대연합의 주장처럼 외부에 두느냐도 핵심적인 사항이다.

 

   
 

여기서 방통위의 방송 관련 기능을 합의적 방송위원회로 존속시켜 ICT 전담 부서의 내부에 두느냐 외부에 두느냐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리고 이는 미래창조과학부의 대략적인 ‘아웃라인’이 나와야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여기에서 종편의 논공행상 기준이 변경될 수 있다. 현재로서 방송과 산업의 중심에 있는 ‘방송 기술’이 통신 및 기타 ICT 산업의 기계적인 성장논리에 매몰되어 플랫폼 미디어 공공성을 상당 부분 상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의외로 종편의 ‘논공행상’은 합의적 방송위원회의 인문학적 미디어 판단이 아니라 냉혹한 산업 발전의 법칙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