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어쾀 TV, ‘자율화의 함정’에 빠지다

[진단] 클리어쾀 TV, ‘자율화의 함정’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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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논란이 되고 있는 클리어쾀 기술을 보급형 디지털 TV에만 적용한다는 설이 분분하다. 만약 사실이라면 방통위가 해당 기술의 상용화를 반대했던 지상파 및 케이블 외 유료 방송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클리어쾀 기술은 별도의 셋톱박스가 없어도 디지털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지만, 케이블에 특화된 기술이라는 점과 완전한 디지털 전환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업계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클리어쾀 TV가 승인되었기 때문에 이 같은 ‘보급형 TV 장착설’은 별다른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명문화된 법적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순수하게 ‘업계 자율화’로 클리어쾀 TV가 등장했기 때문에 사실상 칼자루는 ‘제조사’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클리어쾀 기술은 미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범위한 콘텐츠 저가화 현상을 불러일으켜 종국에는 미디어 시장의 전반을 붕괴시킬 원흉으로 지목되어왔다. 그런 이유로 지상파 및 기타 유료 방송은 클리어쾀 TV를 “홈쇼핑 관련 수익을 지키고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 1,100만을 지키기 위한 케이블의 꼼수”라고 지적하며 ‘업계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해당 기술 상용화를 서두른 방통위를 압박해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방통위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보급형 TV에만 클리어쾀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것은, 일견 방통위가 클리어쾀 기술을 두고 ‘저소득층 타깃 상품이 맞으며, 지금까지 지상파 및 기타 유료 방송의 비판은 틀렸다’라고 주장하는 것같다.

 

   
 

하지만 방통위가 실제로 저소득층 보급형 TV에만 클리어쾀 기술을 접목시키는 로드맵을 추진한다고 해도 이미 업계 자율화로 고삐가 풀린 클리어쾀 TV는 ‘흥행 가능성이 없다’는 제조사의 정책적 판단아래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방통위가 클리어쾀 TV의 파급력을 스스로 한정했지만, 이미 클리어쾀 TV를 만드는 제조사 입장에서도 아쉬울것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냉혹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일조한다. 실제로 최근 제조사의 한 간부는 “제조사 입장에서 저가의 보급형 클리어쾀 TV 판매보다는 고가의 디지털 TV를 판매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며 “올해 출시된 한 제조사의 84인치 UHDTV가 2,500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런 분야에 투자할 수 밖에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근 시장의 판매 트렌드는 ‘묶음 판매’다. 그런 이유로 TV라는 플랫폼을 판매한다고 해도 그에 따른 부수적인 아이템을 함께 묶어 판매하는 것이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익인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클리어쾀 TV는 이미 제조사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다. 여기에 방통위의 보급형 TV 한정설과 ‘업계 자율화’라는 탈출장치도 있다.

그러나 케이블 업체에게는 클리어쾀 TV가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이 분명하다. 서두에서 소개했듯이 클리어쾀 TV로 인해 1,100만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를 그대로 가져가 홈쇼핑 채널 수익을 노려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600만 가입자를 돌파한 IPTV의 성장세에 밀려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케이블 입장에서는 클리어쾀 TV만한 ‘해결의 열쇠’가 없다. 물론 보급형 TV 한정 및 기타 여러 규제적 상황에 대비해 몇 번의 ‘전투’를 치루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최소한의 보루인 ‘클리어쾀 TV’라는 카드가 없는 것 보다는 낫다. 물론 여기에는 8VSB를 둘러싼 논쟁 및 클리어쾀과 연계한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 지원 법의 ‘저소득층 재송신료 면제’ 문제가 거미줄같이 얽혀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