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는 5월부터 가동한 ‘유료 방송 디지털 전환 활성화 연구반’을 통해 도출한 근거를 바탕으로 지난 19일 전체회의를 열어 ‘유료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 방향’을 최종 보고 받았다. 동시에 국회에서는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의 발의로 ‘유료 방송 디지털 전환 특별법’이 추진되는 가운데 무료 보편의 지상파 방송에 대한 정부 주무부처의 미디어 공공성 포기 논란과 별도로 클리어쾀 TV가 정국의 핵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실 클리어쾀 TV는 별도의 셋톱박스 없이 디지털 화면을 시청하게 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시청자를 저가의 케이블 상품에 묶어놓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비판과 더불어 진정한 디지털 전환이 아니라는 지적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방통위는 업계 자율화를 전제로 전체회의를 통해 클리어쾀을 사실상 승인한 셈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방통위가 전체회의 결과를 알리는 도중에 “클리어쾀의 채널 숫자를 줄이면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클리어쾀 기술은 저소득층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채널 숫자를 적게 하면 다른 매체들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다른 업계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셈이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우선 클리어쾀의 채널 숫자를 둘러싼 논란이다. 방통위는 클리어쾀 TV의 채널 숫자를 줄임으로서 케이블 외 매체의 경쟁력 보존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의문부호가 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방통위가 구상하는 현재의 클리어쾀 TV에 핵심 채널이 빠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심지어 채널 숫자를 최소화한다고 해도 정작 방통위는 그 숫자도 확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고 유동적이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방통위가 마치 케이블 외 다른 매체들이 “클리어쾀의 채널 숫자만 줄여준다면 해당 기술의 도입에 찬성한다는 뜻을 표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점이다. 이는 방통위 보도자료에도 명시되어 있으며 방통위 송상훈 디지털방송정책과장이 직접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현재 본지가 파악한 바로는 ‘케이블 내부는 클리어쾀 TV에 대한 의견을 최근에 합의했지만 위성방송 및 기타 매체의 반발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실제로 익명의 위성방송 관계자는 “방통위의 클리어쾀 TV에 대한 다른 매체의 의견 합일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제는 또 있다. 클리어쾀 TV를 저소득층 중심으로 사실상 업계 자율화로 승인한 방통위가 “저소득층을 위한 기술 플랫폼이기에 일각에서 제기하는 저가의 케이블 상품에 많은 시청자들의 발이 묶이는 상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이유로 클리어쾀 TV의 파급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을 것이며, 당연히 다른 매체의 경쟁력을 저하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이는 클리어쾀 TV가 사실상 양방향 등의 새로운 기술 도입이 어렵고 케이블에만 접목되는 기술이라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94년 현재 대한민국의 방통위처럼 클리어쾀 TV를 업계 자율화로 개방했다가 2011년 케이블 업체들의 반대로 결국 기본채널의 암호화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바 있다. 이는 200여 개의 방대한 채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20~30개 채널을 가진 저가의 클리어쾀 TV로 유입되어 콘텐츠의 가격 하락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방향 서비스가 불가능한 클리어쾀 TV의 특성상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을 차치한다고 해도, VOD 서비스를 통한 투자의 선순환 구조도 막혀버리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즉 종합하자면 클리어쾀 TV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낙후에서 기인하는 ‘선순환 투자 감소’와 더불어, 클리어쾀 TV가 아무리 저소득층을 겨냥했다 해도 해당 기술 자체가 다른 계층의 사람들도 충분히 끌어들일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절름발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악몽으로 닥쳐올 것이 뻔하다. 심지어 다른 매체의 경쟁력도 크게 약화되어 ‘디지털 하향 평준화’가 벌어질 공산도 크다. 그런 이유로 케이블 SO들 사이에서도 최근까지 클리어쾀 도입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현재는 도입 찬성으로 모두 돌아섰지만.
이에 전문가들은 클리어쾀 TV를 업계 자율화로 승인한 방통위는 물론, 현재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유료 방송 지원 특별법에 담긴 클리어쾀 기술(확정 기재하지는 않았다) 활성화는 ‘계륵’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얼핏 보면 디지털 전환 속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마법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디지털 전환 하향 평준화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각에서는 방통위가 클리어쾀 TV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산업 불균형을 초래하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