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디지털 전환 정국에서 드디어 클리어쾀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지금까지 각종 이유를 들어 은밀하게 논의되고 있던 해당 사안이 드디어 본격적인 현실화를 위한 정책 드라이브를 시작한 셈이다. 당장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이 같은 논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일 방통위는 제 57차 회의를 열고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 활성화 정책방향에 관한 사항’과 ‘디지털 방송 난시청/수신환경 개선 현황 및 계획에 관한 사항’을 보고받는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당연히 클리어쾀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방통위 표 디지털 전환 활성화 정책’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클리어쾀은 고속의 디지털 변조에 사용하는 기술이자 제한된 주파수 대역에서 전송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반송파의 진폭과 위상을 조합해 변조하는 방식을 취하는 ‘쾀’을 ‘제거’하는, 즉 ‘클리어(clear)’하는 기술을 뜻한다. 그리고 ‘클리어쾀’은 해당 쾀을 제거함으로서 암호화 되지 않은 채널 이외의 채널을 수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즉 디지털 전환된 영상 신호를 손쉽게 수신할 수 있도록 신호에 걸린 암호를 해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케이블 업체는 클리어쾀 기술을 ‘케이블 디지털 전환 정국의 핵심 열쇠’로 삼고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클리어쾀 기술을 활용하면 비교적 손쉬운 케이블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방통위도 업계 자율화 쪽으로 해당 논의의 향배를 결정했지만 사실상 제조사와 케이블 업계의 중간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도출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게다가 클리어쾀을 둘러싼 부작용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클리어쾀 자체가 케이블을 위한 기술 플랫폼이기 때문에 해당 기술이 정부부처의 중점사업으로 부각될 경우 유료 방송 사이에서도 특히 케이블 업체에 대한 편중 현상이 극심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클리어쾀 기술표준에 숨어있는 ‘꼼수 논란’도 한 몫 하고있다. 이는 클리어쾀 기술표준이 지상파 PSIP 기준을 따르게 된다면 특정 SO가 지상파 채널 중간에 홈쇼핑을 마치 지상파와 동일한 채널인양 끼워넣을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클리어쾀을 정부, 즉 방통위가 지원하는것 자체가 이미 산업간 불균형을 초래하는 길이며, 동시에 시청자를 ‘저급의 아날로그 케이블 상품’에 묶어둘 위험이 크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해당 기술이 과연 디지털 전환 정국에 있어 ‘실질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볼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클리어쾀 기술은 디지털 전환의 혜택 중 하나인 ‘양방향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수백개의 채널이 제공되는 방송 서비스보다 지상파, 공익, 종교 방송 등 20~30개의 방송 서비스가 제공되는 클리어쾀 기술이 ‘저렴한 투자비용에 저렴한 이용료’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디지털 방송을 아날로그로 보기만 하게 하는 방송’이라는 비판을 가하는 실정이다. 한 마디로 ‘디지털 전환의 미완성’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장실 의원의 유료 방송 디지털 전환 지원 법안과 함께 방통위의 실질적인 클리어쾀 도입 추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클리어쾀을 두고 케이블 업계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가는 상황이지만, 최소한 방통위는 수치상의 디지털 전환 상승에 대한 욕망을 저버리지 못한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