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모정훈 연세대학교 교수] 100년 역사의 방송이 30년 역사의 인터넷 도입으로 사라지고 있다. 1920년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로 데뷔했던 방송이 인터넷 기반 OTT로 대체되고 있다. 인터넷 스트리밍 기술의 발전과 망 대역폭이 충분해지면서 더 이상 콘텐츠를 기다리면서 보는 ‘본방사수’라는 콘텐츠의 공동구매 방식보다는 개별구매로 바뀌는 것이다. 젊은 MZ세대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short clip이라고 하는 요약본을 원하는 속도로 설정한 채, 불필요한 부분은 건너뛰면서, 지하철 안에서 소비한다. 콘텐츠의 비동시적 개별구매일 뿐만 아니라 선택한 콘텐츠도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집중 소비하는 것이다.
대안 신기술이 등장할 때, 기존 사업자는 새로운 기술과 기존 기술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하버드의 경영학자 크리스텐슨 교수는 다수의 사업자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기보다 기존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KT는 인터넷 전화가 도입이 되었을 때, 유선전화를 유지하면서 인터넷 전화 도입을 늦추는 결정을 하였다. 그 당시 소규모 인터넷 시장 때문에 수조 원 매출의 유선전화시장을 포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 전화시장을 포함한 유선전화시장은 전성기의 1/10로 매출이 줄어들었고 KT는 더 이상 유선전화회사가 아니다.
방송사의 대응도 KT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방송기술자들은 UHD와 ATSC 3.0등 차세대 방송표준기술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의 컴캐스트 등은 DOCSIS 4.0을 차세대 케이블 표준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동시 소비를 지원하던 방송기술의 확장판이다. 문제는 이 기술들의 효용성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용자가 인터넷망을 통하여 콘텐츠를 접하기 때문에 케이블망과 지상파를 통한 사용자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 경영자들도 비슷하다. 신기술로의 빠른 전환보다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려고 한다.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 간단하지 않고 기존방식에 대한 관성 때문이다.
세계적인 혁신기업 IBM사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 전환으로 경영학 교과서에 실렸다. 동사는 컴퓨터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1980년대 후반까지 메인프레임이라 불리는 대형컴퓨터시장에서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하지만 90년대 초 PC의 성장으로 메인프레임 비즈니스 모델이 저렴한 클라이언트 서버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 위기에 1993년 IBM사는 루이스 거스너를 CEO로 외부에서 영입하고 구조조정에 나선다. 그는 컴퓨터 회사였던 IBM사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서비스를 함께 묶는 솔루션을 파는 컨설팅 중심회사로 변경시켰다. 하드웨어 중심 비즈니스 모델에서 솔루션 중심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미디어 경영학자 루쉬 큉 교수는 미디어 기업에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대응’이라고 하였다. 흔히 이야기하는 CPND 즉,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기기로 표현되는 미디어 생태계에서 플랫폼의 자격과 주요 전송망(network)을 빼앗긴 방송사업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즉 P와 N은 흔들리고 남은 것은 콘텐츠와 디바이스 뒤의 사용자다. 콘텐츠 경쟁력이 있는 지상파 사업자의 경우 콘텐츠 중심 기업으로 진화와 동시에 사용자들이 비동시 개인소비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기반 기술로써 UI/UX, 콘텐츠 추천, 사용자를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 기술 등에 집중이 필요하다. 방송사업자가 방송기반 기술에 몰두하고 고도화하는 전략보다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두고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개인소비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가 집단소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방송이란 단어도 응답하라 시리즈의 소재가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