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9월부터 K뷰 실험방송 ‘강행?’

[미디어 비평] KBS 9월부터 K뷰 실험방송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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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호우로 댐이 무너지려 한다고 가정합시다. 댐이 무너지면 강의 하류에 있는 마을은 온통 물바다가 될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위기라고 생각해봅시다.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마을 이장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는 내심 댐이 무너져 자신의 마을이 홍수 피해를 당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한 달전 자신에게 찾아온 외부 건설업자 때문입니다. 그 건설업자는 감언이설로 이장을 꼬드기며 ‘마을이 물에 잠겨 싹 사라져 버리면 그 자리에 근사한 유료 테마파크’를 지어주겠다고 설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장은 내심 흐믓한 표정으로 패닉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위태로운 댐이 얼른 무너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갑자기 마을의 한 기술자가 날카롭게 내리치는 빗속을 뚫고 위험천만한 댐 앞에 섭니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갈고 닦은 기술로 순식간에 무너지기 직전의 댐을 수리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환호했고 이장은 내심 씁쓸해했으며, 외부 건설업자는 갑자기 기술자를 걱정하는 마음이 생긴 듯 “위험한 잠재적 사고 현장을 홀로 막서는 것은 만용이며, 위험한 댐 붕괴 현장에서 공사를 ‘강행’한 것은 미친 짓일 뿐이다”고 목청을 높입니다. 참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가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전국 디지털 전환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가상종료나 자막고지 등을 남발하여 직접수신률이 뚝뚝 떨어지는 요즘, 무료 보편의 공공 서비스를 구현하는 마지막 보류인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는 그야 말로 가뭄에 단비니까요. KBS는 이달부터 11월까지 제주도에서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의 일환인 ‘K뷰 실험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팩트’를 놓고 뭔가 미묘한 말 바꾸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기사가 있어 소개하려합니다. 바로 우리 [미디어 비평]의 단골 손님인 [전자신문] 기사 ‘KBS 9월부터 `K뷰` 실험방송 강행…유료방송업계 “정식 방송땐 결사반대"’입니다.

사실 기사 내용 자체는 약간 평이한 감이 있습니다. K뷰가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관계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유료 매체의 반발을 중심으로 기사를 썼으니까요. 하지만 유료매체 관계자의 ‘기술연구를 위한 실험방송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험방송이 정식방송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사 반대한다”는 멘트를 실었던 것은 참 흥미로웠습니다. 왜나고요? “너희들은 이 까지만 해라”는, 소위 미디어 다양성을 지향한다는 유료 매체 관계자의 발언에 “우리 영역 침범하지 마라”라고 말하는듯한 뉘앙스가 짙게 베어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다 돈이 문제입니다. 돈이.

 

   
 

하지만 이 [전자신문]의 기사가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제목에 있는 ‘강행’이라는 표현입니다. 글쎄요. ‘강행’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왠지 ‘여건이 되지도 않는데 억지로 실시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글 서두에 기술자가 무너지기 직전의 댐을 공사한 것을 두고 건설업자들이 ‘강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듯이, 현 정권의 각종 역점사업들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강행’되어 온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표현 자체가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정말 소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문제이지만 제목의 단어 선택 하나에서 오는 이 미묘한 느낌. 이것이 바로 [전자신문]이 노리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비록 ‘K뷰’만 특정하지 않더라도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는 말 그대로 무료보편의 공공 서비스라는 것을요. 또 불편한 진실입니다만, 유료 매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반대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요. 그리고 [전자신문]의 단어 선택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숨어있는 이익단체의 그림자에서 교묘한 영향력을 정말 가감없이 발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교통혼잡을 해소하기 위해 나라돈으로 고속도로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국영 고속도로가 운영되기 위한 최소한의 이용료만 받고 사람들에게 개방하려 하지요. 그런데 바로 그 때 민영 건설업자들이 반발합니다. ‘고속도로의 다양한 취향’을 기치로 자신들이 민영 고속도로를 만들어(심지어 국비 보조도 받아) 사람들에게 비싼 이용료를 챙기고 싶었는데 국영 고속도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싸게 공유한다니 화가 난거죠. 딱 이겁니다. 유료 매체들은 미디어 다양성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싶었던 것이고, 그런 이유로 국영 고속도로에 해당되는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막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신문]은 그 선봉에 섰다고 볼 수 있겠네요.

우리 이제 조금 솔직해 집시다. 유료 매체는 돈을 벌고 싶은 것이잖아요? 그러면 경쟁을 해야죠. 사람들이 알아서 선택할 것입니다. 꼭 자신들이 돈을 벌 타이밍에만 미디어 다양성 운운하지 말고 정말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에서 미디어 다양성을 언급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전자신문]도 마찬가지에요. ‘강행’이라는 두 글자를 두고 이리 장황한 글을 쓰니 저 자신도 조금 치사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게 어디 한 두 번이 아니니까 말이죠. 저도 참 답답합니다. 이것도 제가 확대 해석한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