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능력으로 연명하는 종편, 탈출구는 멀어진다

[칼럼] 영웅의 능력으로 연명하는 종편, 탈출구는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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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가 영웅을 만든다. 중국 후한말 조조의 등장이 그러했으며 고대 로마제국시절 율리우스 시저의 활약이 그랬다. 하나의 조직이 총체적 난국에 빠지면 어김없이 혼란이 찾아오는 법이다. 무분별한 카오스적 위기상황이 심해지면 구성원들의 공포는 극에 달하고, 동시에 이를 극복하게 해줄 간절한 소망을 찾게 된다. 영웅의 탄생이다.

요즘 종합편성채널의 상황을 보면 딱 후한말 중국이나 고대 로마제국 시절 흔들리는 공화정을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저조한 시청률, 안팎의 논란, 혼란스러워하는 구성원들. ‘발전’보다는 ‘생존’에 더 가치를 두는 종편이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종편은 프랜차이즈 PD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스타 PD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영돈, 이동희, 윤형준 PD가 있겠다. 이들은 지상파 방송사에서 소위 ‘대박’ 프로그램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그 연출력을 인정받은 PD이며 종편 개국 후 자리를 옮겨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 이영돈 PD는 종편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이름 한 번 정도는 들었음 직한 인물이다. 저 유명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KBS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이영돈의 소비자 고발’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KBS 기획제작국 국장의 자리까지 오른 PD. 명실공히 최고의 PD 중 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그는 [채널A]로 자리를 옮겨도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자신이 KBS에서 연출했던 ‘소비자고발’과 유사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과 ‘이영돈 PD의 논리로 풀다’를 통해 꾸준한 시청률을 기록 중인 것이다. 특히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은 최근 시청률이 3%를 넘기며 [채널A]의 보물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게다가 여름특집으로 방영된 ‘이영돈 PD의 논리로 풀다’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흉가체험을 전면에 내세워 큰 호응을 이끌었으며 이영돈 PD가 직접 흉가에 찾아가 체험을 하는 한편 스튜디오에서 혼령의식을 치르는 파격적인 연출로 커다란 반향을 이끌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방송에서 이영돈 PD는 혼령의식으로 찾아온 귀신에게 자신의 프로그램 시청률 대박을 기원하기도 했다. 또 이영돈 PD는 동아미디어그룹 종합편성TV 상무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채널A] 입장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불릴 정도이리라.

여기에 [JTBC]의 윤현준 PD와 이동희 PD도 있다. 이들도 이형돈 PD처럼 다년간의 지상파 방송 노하우를 앞세워 꾸준한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특히 윤현준 PD의 ‘신화방송’은 종편 예능치고는 높은 1.455%라는 시청률을 수확했으며 개그맨 이수근과 김병만을 앞세운 이동희 PD의 ‘상류사회’도 10개월에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듯 스타 PD의 등장은 위기에 처한 종편을 구할 마지막 ‘구원자’로 여겨지고 있다. 지상파에서 쌓은 탁월한 연출 감각을 종편에서 마음껏 발휘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종편 내부에서도 이들 스타 PD를 더욱 전면에 내세워 프로그램 홍보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영돈 PD가 대표적이다. 그의 프로그램은 모두 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는가. 그만큼 종편은 이영돈 PD 같은 스타 PD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는 뜻이겠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할까.

현대사회는 한 명의 전문가로 특정 업무를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다. 최근 정치권의 한 유력 대선주자가 고백했듯이 “복잡하고 유기적인 현대의 업무는 한 명의 특출난 인재로 꾸준한 생명력을 가지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맞다. 어느 조직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그 조직 내부의 상호 보완적 협력구조가 완전히 힘을 받아야만 그것을 ‘진정한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도 이런 사례를 배울 수 있다. 개인주의적 성향을 버리고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해 우직하게 지중해를 지배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이나 찬란한 고대 문명을 창출했던 공화국으로서의 로마제국이 좋은 예겠다. 비록 그 자체만으로도 부작용은 존재하지만, 역사는 증명한다. 그들이야말로 오랫동안 ‘지배자’였다고.

지금의 종편도 마찬가지다. 한 명의 뛰어난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가 존재한다고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가 월드컵 우승을 노리기에는 무리가 있듯이, 스타 PD에 의존하는 종편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속설 그대로 현재의 종편은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스타 PD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생명력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꾸준한 생명력은 반짝이는 개인이 아니라 우직한 조직의 추진력에서 나온다.

후한말의 영웅 조조가 죽자 중국은 다시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로마의 율리우스 시저도 비슷했다. 비록 로마는 시저의 죽음 이후에도 공화정으로 내재한 ‘조직 협의의 문화’가 살아있었고 영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아우구스투스라는 균형 잡힌 정치가가 있었기에 그 정도의 차이는 덜했지만, 시저의 죽음을 기점으로 로마에서도 영웅의 시대는 종결을 맞았다. 많은 사람의 상상과는 다르게 이후의 로마제국 황제는 절대권력을 틀어쥔 중세 유럽의 전제군주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즉, 영웅의 급작스러운 퇴장은 더 커다란 혼란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종편의 스타 PD 등장이 마냥 완벽해 보이지 않는다. 비록 종편에서도 “우리는 스타 PD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항변을 할지 모르지만, 글쎄다. 지금 당장은 스타 PD의 존재가 종편을 아주 ‘블링블링’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제 종편은,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종편의 옥타비아누스’를 키우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겠다. 물론 이러한 시각의 전제조건은 당연히 ‘균형잡인 미디어 역량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 하지만 요즘 미디어렙 법 논란을 살펴보니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씁쓸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