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언론도 국민도 숨이 막히던 MB정부가 끝나간다. 5개월 후면 차기 대선이다. 많은 언론이 마치 박근혜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인양 떠들고 있으나 결과는 예측불허다. 지상파 방송, 조중동과 종합편성채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삼위일체가 되어 치룬 411총선임에도 불구하고 여야로 갈린 표를 합산해보면 여당에 불리하다. 여당은 여당대로 불안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애매한 선거가 아닐 수 없다. 누가 중도를 아우를 수 있는 상식적이고도 합리적인 대안을 낼 수 있는가에 선거의 향배가 달려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MB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차기 정부의 방향을 제안하는 토론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방송 혹은 통신관련 NGO, 학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념적 지향성과 상관없이 고른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MB정부의 방송정책은 정치적으로 사유화되었으며 통신정책은 좌표를 잃고 부유했다는 내용이다.
좌우가 사안사안마다 뜨겁게 충돌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참으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MB정부의 미디어정책은 총체적 실패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한다면 같은 편도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나 할까. 결론적으로 MB정부는 시장주의를 표방하였으나 시장주의에 근거한 정책 프레임을 제시하지 못했고 일관성 있는 정책운영에도 이르지 못해 무능력과 무책임을 드러내는 낙제점수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방송정책을 중심으로 좀더 살펴보자.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설명하였던 바와 같이 방송 정책의 정치도구화다. 크게 4개의 종합편성채널 도입으로 상징되는 언론 구도 재편 시도와, 지상파방송과 YTN 등 비판적 언론의 자율성을 짓밟는 줄세우기 전략이다. 그 시작점인 한나라당 미디어법의 궁극적 목표 지점은 신문과 방송 등 주류 언론의 흐름을 보수화하고 방송과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전략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대기업과 보수 신문에 적용되어 온 방송의 진입·소유규제를 대거 완화하였으며, 방송프로그램의 내용규제와 포털 사이트 관련 규제가 강화되었다.
미디어법의 마무리는 무모하고 무책임하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는 4개의 종합편성채널 허가였다. 이를 보호하기 위한 형평성 없는 특혜지원정책도 많은 이들의 빈축을 산다. 2009년 이후 방송정책은 종편에 유리하면 의결하고 종편에 불리하면 철회하는 수준의 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이어진 낮은 채널 지원정책, 간접광고 허용 및 광고 품목 규제 완화 정책, 자율적인 광고 판매 열어주기 등은 종편에 의한 종편을 위한 종편의 정책을 잘 보여준다. 현재 제한된 광고시장 속에 던져진 종편은 준비되지 않은 프로그램 제작 역량과 맞물려 방송미디어 속의 황소개구리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MB정부의 방송정책 도구화는 지상파 등 주류 언론의 무력화를 위해서도 적극 활용되었다. 정권 충성도에 의해 결정된 편향적 이사 구성은 낙하산 사장 선임의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KBS 정연주사장을 필두로 해 YTN, MBC로 이어진 낙하산 행렬은 지금의 언론사 파업의 원인이 되었다. 과정에서 벌어진 경찰의 사내 진입, 근거 없는 사장 해임권 행사 등은 공영방송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치욕을 남겼다. 인사권 장악은 보도통제로 이어졌으며 이렇게 장악된 언론 기능은 편파 불공정 보도, 시사보도프로그램 실종 등으로 이어져 방송저널리즘을 황폐화시키고 국민의 알권리가 원천 무시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6대3위원회라는 오명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노골적 편파 심의를 통해 방송사 길들이기의 마지막 선수를 자임했다. 이 모든 것을 이끌던 최시중위원장의 비리 혐의는 정치적이었을 뿐 아니라 부도덕하였던 MB정부 미디어정책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돌아보면 MB정부가 시작된 2008년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급진전되던 때로, 미디어 환경 변화를 고려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설립되고 IPTV가 도입되는 등 새로운 규제정책의 기반이 마련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MB정부는 IPTV도입을 끝으로 융합정책에 대한 관심을 마무리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미래 비전을 바탕으로 한 원칙적인 분쟁 조정의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사업자 분쟁은 양산되었지만 원칙도 미래도 없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무기력한 분쟁 조정이 노출될 뿐이었다.
책임질 사람도 구조도 없었다. 스포츠 중계권, 재전송, 주파수 배분 등 해결 없이 반복되는 사업자 분쟁은 이용자 권리가 직접적으로 침해되는 상황 속에서도 아무런 제재 없이 잊혀지고 또 반복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는 바로 공공서비스 획정, 수평적인 규제체계 도입 등 규제의 기초 골격이 완성되지 못한 것에 주된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사업자들의 정부 불신은 극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렇게 상실된 신뢰를 회복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투여되어야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짚고 가는 실정 중 하나가 바로 아날로그 종료 정책으로 둔갑한 디지털 전환정책이다. 올해 말 종료되는 디지털 전환정책은 고화질, 쌍방향이라는 디지털의 수혜를 기대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방송사, 이용자 모두 실익이 없다. 90%의 유료방송 가입가구들의 그대로 방치한 채 8.9%의 직접 수신 가구 중 디지털TV와 튜너를 갖추지 못한 아날로그 직접수신가구 단 5.6%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청권 보호 정책은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에 차기 정부의 미디어정책은 MB정부의 실패만을 반면교사로 하여 세워져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하다. MB정부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정책이 사유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공공서비스 획정 및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는 매체 환경 변화에 따른 공적 책무를 재구성하고 재원을 현실화하여 그에 따른 새로운 질서를 재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정치적, 경제적 독립성을 보장하고 감시하는 문제도 차기 정부 정책의 골간이 되어야 한다. 방송사 사장 선임방식 및 지배구조 개선. 제작 자율성 및 표현의 자유 보장 등은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공정경쟁 기반 마련을 위한 수평적 규제체계 도입, 콘텐츠 중심 지원체계 구축. 이용자 권익 보호 등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차기 정부를 이끌 주체라면 그가 누구든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인식해야 할 숙제들이다. 누구도 지난 정부의 실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