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놓칠 것인가
16세기 유럽에서 절대주의가 확립된 이래 프랑스는 숙적인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미국이 독립하면 영국이 큰 타격을 입을것이고, 프랑스는 자연스럽게 라이벌을 꺾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 지원의 크기가 문제였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과도한 세금을 징수해 무리하게 미국을 지원했고, 이는 큰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왕정은 무너졌으며 루이 16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왕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귀족들은 이내 자신들의 정치논리에 따라 ‘횡포’를 일삼았고 ‘인간다운 삶’을 기대했던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나폴레옹 1세’라는 전무후무한 독재정복자가 나타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더 기막힌 사실은, 그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현재에도 대한민국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그 같은 일이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훈훈’한 분위기의 방통위,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지난 2월 3일 최시중 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나고 두 번째로 전체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자리에 모인 상임위원들은 모처럼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한 위원은 “이게 바로 합의제”라며 모처럼 정권 실세 위원장이 없는 전체회의를 흡족하게 평가했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정권의 실세에 따라 좌지우지 되었던 방통위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러니한 진실’에 있다.
훈훈함과 절박함의 차이
방통위가 아주 오랜만에 ‘훈훈’한 덕담을 나누던 그 시간. 언론개혁시민연대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은 차가운 칼바람을 맞아가며 건물 앞에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의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었다. 너무나 대비되는 상황이다. 바로 이것이 훈훈함과 절박함의 차이다.
방통위는 다시 태어나라
미국을 돕기 위해 무자비하게 국민의 재산을 세금으로 징수했던 루이 16세처럼, 최시중 씨는 종합편성채널과 통신사를 돕기 위해 국민의 공공재인 주파수를 넘긴 인물이다. 그리고 그 역시 루이 16세 처럼 역사의 단죄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문제는 다음이다. 이제 방통위는 최시중 씨를 구속수사하라고 외치는 시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동시에 잘못된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새로운 정책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이는 주파수 정책도 마찬가지다. 온갖 비리설에 휩샇인 방통위가 기존의 주파수 정책만 그대로 계승하는 것은 결국 지금의 방통위가 ‘최시중 씨의 방통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고백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국민의 공공재인 주파수를 올바른 위치에 돌려놓아야 한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모든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700MHz 대역 주파수의 분할할당을 통한 통신사 몰아주기도 중지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