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알맹이 쏙 빠진 ‘디지털 뉴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생태계 강화와 디지털 포용 및 안정망 구축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 뉴딜 예산으로 8,139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는 지상파 방송사가 5G–UHD 융합 공공서비스 인프라 구축 및 활성화, 실감형 교육 콘텐츠 제작 및 확산, 공영 디지털 방송 콘텐츠 아카이브 구축 등에 신청한 예산은 모두 배제되었다.
‘디지털 뉴딜’ 정책에서 방송을 일부러 배제하는 것인가? 지상파 방송사가 취약 계층을 위한 ‘UHD와 5G 연동 및 융합’ 인프라 구축 및 활성화를 중점 과제로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부처 간 이견으로 기획재정부 검토 단계에서 해당 과제 자체가 삭제됐다. 방송 없이 5G와 AI 융합만으로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화와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겠다는 것인데 ‘알맹이 빠진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뉴딜’은 미국 루스벨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한 연설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의미한다. 사회적 취약 계층을 위한 정책을 중심으로 경제 회복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 중 하나인 디지털 뉴딜에도 마땅히 취약 계층을 위한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사회에서 무인 및 자동화 기술은 취약 계층에게 접근을 불허하는 ‘장벽’이 될 수 있다. 5G나 AI도 마찬가지다. 반면 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 소외 계층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다. 방송 없이 5G나 AI만으로 디지털 뉴딜을 진행한다면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체가 지상파 방송이다. 시민들도 코로나19 관련 가장 신뢰하는 매체로 지상파를 꼽았다.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있지만 그 중 지상파 뉴스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들은 재난재해 시 보편적인 정보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난방송 주관사인 KBS는 24시간을 관통하는 ‘코로나19 KBS 통합뉴스룸’을 운영하며 상시 특보체제로 대응을 하고 있으며, MBC와 SBS도 특별재난방송을 편성해 인포데믹 속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적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고 있다. EBS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상 초유의 등교 개학 연기, 온라인 개학 시행의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의 교육 단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긴급히 프로그램을 제작, 편성하여 EBS 지상파 1TV, 2TV를 포함, 가용 방송 채널과 온라인클래스 등을 통해 중단 없는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재난 상황 시 교육 공백을 메우는 공적 역할이 지상파 방송사인 EBS를 통해 증명된 셈이다. 2018년 아현동 통신구 화재 같은 통신 대란이 발생하더라도 지상파 TV와 라디오는 끊김 없이 재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때문에 업계와 학계에서는 다양한 부가 서비스가 가능한 지상파 UHD를 재난 매체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지상파 방송사가 제시한 UHD‧5G 연동 및 융합도 이 같은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 2중‧3중 체계로 돼 있어 특정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텍스트부터 이미지, 영상까지 다양한 형태의 재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취약 계층의 부담 중 하나인 통신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부분만 보더라도 5G와 방송 융합은 디지털 뉴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UHD와 5G 연동 및 융합은 이외에도 무한한 부가 서비스 확장이 가능해 방송통신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또 UHD와 5G 융합형 인프라 및 서비스 활성화는 새로운 산업으로 구축될 수 있고 이는 곧 일자리 창출로도 연결된다.
지상파에 대한 차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개최된 제12차 정보통신전략위원회에서 발표된 ‘디지털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에서도 지상파 방송에 대한 무관심은 여전하다. OTT를 포함한 비규제 플랫폼에 대한 지원과 유료방송 업체 간 인수합병 제도 정비 등의 규제 완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지상파에 대한 논의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017년 본방송 이후 인프라 구축 및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부담만 가중되고 고화질이라는 명목 외에 모바일, 융합서비스, 5G 연동 등 다양한 서비스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지상파 UHD 방송에 대한 지원과 규제 개선 등은 안중에도 없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운다면서, 한국이 유일하게 보유한 ‘Made In Korea’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인 ATSC3.0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배제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치명적 우를 범하고 있다.
과거처럼 지상파 독과점 시대의 특혜나 독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과거의 낡은 규제 속에서 불공정 경쟁을 하는 미디어 플랫폼에서의 기울어진 운동장만 바로 잡아달라는 것이다. 지상파라는 좋은 기술이 있음에도 왜 제대로 활용을 못 하는지 도대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5G와 AI라는 ‘디지털’에 지상파를 넣었을 때 비로소 ‘디지털 뉴딜’이 완성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지상파를 포함한 공공 플랫폼 기반의 미디어 생태계를 키워나가는 방향이 진정한 디지털 뉴딜 정책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에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는 과기정통부와 방통위가 디지털 뉴딜 정책을 지금이라도 제대로 논의하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