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KBS 남산송신소장
“2012년 12월 31일 새벽 4시를 기해 현재 아날로그로 방송되고 있는 모든 국내 지상파 TV방송을 종료 한다”는 것이 디지털 전환 특별법의 시행령으로 정해진 정부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ASO(Analog Switch-Off, 아날로그 방송 종료)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모든 인프라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고, HD 프로그램 제작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디지털 전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아날로그 TV방송 종료를 불과 1년여 앞둔 상황에서 지상파 디지털전환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비현실적일 수 있고, 또한 지상파 방송사에 종사는 하는 사람으로서 방송사 입장을 옹호 하는듯한 글을 쓴다는 것이 낯간지러운 일이 될 수 도 있다. 그러나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 종료를 1년여 남겨둔 중요한 시점에서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한 정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정부 주도하에 추진되고 있는 지상파 디지털 전환 정책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정부는 아날로그 TV방송 종료 시 나타나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정책에 반영코자 지난 6월 29일 오후 2시를 기점으로 특별자치도인 제주지역의 아날로그 TV방송 종료를 실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 모든 제주 지역의 주민들은 양질의 디지털 TV방송을 향유하고 있을까? 아마도 ‘아니오’ 라는 답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홍보 및 제반사항에 대한 준비부족으로 디지털 TV방송 수신과 관련된 민원이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발생된 민원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그 동안 무료로 지상파 TV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시청자들조차 유료방송에 가입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제주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디지털 전환관련 홍보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DTV Korea의 입장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제주 지역의 시청자들이 지상파 디지털 TV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디지털 수상기나 컨버터를 갖추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일까? 2011년 11월 4일 진행된 “2012년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이라는 토론회에서도 이대로 가다간 2012년 12월 31일부터 지상파 TV방송을 볼 수 없는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의견도 나왔으며, 2011년 11월 3일 진행된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 토론회에서는 지상파의 무료 다채널 서비스 도입이 조속히 실행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를 위해 직접 수신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아날로그 TV방송 종료로 인한 대재앙을 막고, 기존 지상파 TV방송의 직접 수신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저소득층 가구 등에 대한 디지털 TV방송 수신 장치 보급 및 지상파 디지털 TV방송 수신환경을 최적화하여 난시청지역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들이 송신소와 간이중계 시설을 많이 구축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뾰족 한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결국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지상파 디지털 전환을 위해 지금까지 정부 차원의 지원은 있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000년 이후,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 TV방송으로의 전환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왔다. KBS의 경우 금년 말 기준, 지상파 디지털 TV방송으로의 전환을 위해 제작시설에 약 4,520억원, 송신시설에 약 1,590억 원을 투자하였고, 아날로그와 디지털 TV방송을 동시에 운용하는데 필요한 비용과 HD프로그램 제작에 1,300억 원 정도가 투자되었다. 앞으로도 KBS는 디지털 난시청 해소에 필요한 비용을 포함 5천 500억 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다른 지상파 방송사(MBC, SBS 등)들 역시 비슷한 상황으로 디지털 TV방송 전환을 위해 투자한 비용이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들의 경우 고품격의 다양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투입되어야할 비용을 제쳐 두고, 마냥 아날로그 TV방송 종료를 위해 예산을 투입 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방송사들은 디지털 TV방송 전환비용 마련을 위해 인건비 축소와 각종 비용절감은 물론 심지어 부동산 매각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KBS의 경우 수신료 현실화가 이루어지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당장 내년에만 디지털전환 비용으로 2,500억원을 투입해야 하는 실정으로 이에 따른 재정적 부담이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이처럼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은 2012년 12월 31일 성공적인 디지털 TV방송 전환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오고 있는데도 반해, 정부의 지원은 기껏해야 관세감면이나 융자지원 등이 고작이다. 이마저도 관세감면의 경우 품목이 한정되어 있고, 융자지원 또한 시중금리와 별로 차이가 없어 디지털 전환을 위한 정부의 지원 혜택이라고 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외국의 경우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 호주,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수신료 인상 등을 통해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 바 있으며, 지난 7월 디지털 방송 전환을 마무리한 일본의 경우 4년 동안 12조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였으며, 2009년 디지털로 전환을 마무리한 미국의 경우도 3조 7천억원을 투입한 바 있다. 따라서 정부는 저소득층 지원방안 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만 해야 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하는데, 디지털 TV방송 수상기와 컨버터가 준비되어도 디지털 TV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전파환경을 위한 인프라가 지상파 방송사들에 의해 적기에 구축되지 않는 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정책 당국은 시간이 흐르다 보면 디지털 전환은 알아서 잘 되겠지? 라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이라도 2012년 아날로그 TV방송 종료를 위해 무엇이 절실히 필요한지 시청자와 디지털 전환을 선두에서 선도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입장에서 심도 있게 살펴보고, 획기적이고 통 큰 지원 대책을 강구해 주길 바란다. 아울러 지상파 방송사들도 디지털 전환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성공적인 전환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TV방송 종료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