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법, 출구는 없나?

미디어렙법, 출구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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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광고판매대행사(이하 미디어렙) 법안의 국회 통과가 또다시 무산됐다.

지난 19일 오후 미디어렙 법안 처리를 위해 한나라당이 단독 소집했던 국회 본회의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법안을 상정하지도 못한 채 산회했다. 현재 미디어렙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은 본회의에 앞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미디어렙 법안의 수정을 논의했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본회의에 상정할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법안 중 ‘미디어렙 지분 40% 이상 소유제한’ 문구에 문제를 제기하며 자구 수정을 요구한 것에 민주통합당이 반대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여야 정치권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사와 종편 그리고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일부러 공백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를 통과한 미디어렙 법안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의 미디어렙 의무위탁 ‘사업자 승인일’로부터 3년 유예 △KBS․MBC․EBS 3사를 공영으로 묶어 ‘1공영 다민영’체제 유지 △민영 미디어렙 방송사 1인 최대 지분 40% 이하 △이종매체 간 교차판매 금지 △지주회사 출자 금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을 두고 지상파 방송사 3사는 물론 시민사회단체들조차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과 445개 시민단체들이 함께하는 조중동방송저지네트워크는 ‘원칙론’을 내세우며 미디어렙 법안의 재논의를 주장하고 있다.

정연우 민언련 대표는 “미디어렙 법안은 방송광고가 뉴스나 프로그램 제작 등에 유착되는 것을 막도록 하는 것이 근본 취지”라면서 “현재 통과된 법안 그대로 시행된다면 기업에 유리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압박을 중간에서 차단하는 장치 없이 미디어렙사는 방송사 내에 있는 광고영업부와 똑같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언론개혁시민연대․지역방송협의회․종교방송협의회 등은 민주통합당의 방침에 따라 ‘선입법 후개정’을 요구하며 미디어렙 법안의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이미 종편과 일부 지상파 방송사가 독자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을 직시해 다소 미흡하더라도 우선 입법에 합의하고, 총선 이후 법 개정을 하자는 입장이다.

언론노조는 “유예라는 꼬리표를 달았으나 종편에 미디어렙에 위탁되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회적 확인을 얻었고, 지역∙종교방송사에 대한 실효적인 지원근거를 마련한 만큼 우선 미디어렙 법안이 빠르게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용진 BBS(불교방송) 노조위원장도 “논란이 있는 일부 문구는 미디어렙 법안을 통과시킨 뒤에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그 어떤 문제도 미디어렙 공백사태로 인한 지역∙종교방송사들의 연쇄도산보다 앞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11일 공개된 광고 매출 자료를 보면, 지역∙종교방송사의 1월 광고가 전년 대비 35~78%까지 급락한 것을 알 수 있다. 지역∙종교방송사의 재정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여야가 앞다투어 미디어렙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을 구축하기 위해 ‘전형적인 눈치보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들조차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며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미디어렙 법안을 입법시키기 보다는 차라리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꼬인 실타래가 풀리기는커녕 더욱 꼬여만 가고 있는 미디어렙 법안은 당분간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법적 공백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