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헌법재판소는 30년 가까이 지속된 방송광고판매 독점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상파 방송 광고 판매 대행 독점이 헌법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렸으며 1년을 대체입법시한으로 줬다. 시한을 앞둔 2009년 말까지만 해도 미디어렙이라고 불리는 방송광고판매대행회사 관련 법안은 정치권과 미디어 업계에 뜨거운 감자였다.
곳곳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렸고, 정치권 아니 여당 내에서도 입장차가 뚜렷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법안에 따라 존폐가 갈릴 수 있는 종교방송과 지역방송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민영 회사는 몇 개까지 허용할 것인지 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되기도 했다.
그랬었다. 지금은 그렇게 논쟁하고 방송광고 경쟁체재 도입을 그랬던 일이 어느 덧 머나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다. 대체입법시한 내 관련 법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분주하더니, 막상 1년을 지나고 나니 시간이 지날 수록 중요도에서 더욱 밀려가고 있다. 신문지상이나 방송에서도 아주 가끔 다뤄질 뿐이다.
물론 정치권이 이 문제를 계속 방기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입법 중요성에 공감하고 우선 처리하겠다는 뜻을 끊임없이 밝히고는 있다. 포털에서 ‘미디어렙’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자. 지난 2월, 그리고 4월. 국회가 열릴 때마다 우선처리하겠다는 의원들의 의지가 담긴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지난 1월 당정협의회에서는 방송광고판매 경쟁체제 도입을 위한 미디어렙 입법 과제를 반드시 2월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뜻을 모았다. 복수의 참석자들은 협의회에 참석했던 이들 모두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급한 입법과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2월 국회에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여야가 4월 임시국회에서는 최우선처리하자고 합의했다는 정도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입법’ 문제다. 정치권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절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4월 국회가 지나고 6월 국회를 앞두고 있다. 6월 국회를 넘겨 12월까지 가게 되면 사실상 논의되기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시기에는 법안보다 예산에 대한 논의가 우선한 탓이다. 그리고는 총선과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정치권 최대 이슈인 선거를 앞두고 방송 광고 시장을 걱정한 심도깊은 ‘논의’는 상식적으로도 기대하기 힘들다. 6월이 마지막이라는 이유다. 한달여간 정치권은 미디어렙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미디어렙 법안이 중요한 이유는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지키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방송광고 판매 대행회사는 광고 판매를 대행회사에 맡김으로써 방송 뉴스를 비롯한 콘텐츠가 광고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게 되는 것으로부터 일정정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보다도 이 제도는 우리나라에 종교방송, 지역방송 등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방송이 존재할 수 있는 근간이 됐다. 방송광고 직접 영업이 시작되면 보호막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물론 해외에는 미디어렙 제도를 운영하지 않은 나라도 있다. 철저하게 경쟁에 맡기는 것이다. 완전 경쟁은 때로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방송의 공익성 공공성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시청자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보다 시청자를 자극하는 프로그램, 광고주에게 매력적인 프로그램에 더 치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괜한 걱정이라고 할 수 없다.
미디어렙 체제를 ‘1공영 다민영’으로 할지, ‘1공영 1민영’으로 할지도 쟁점 중 하나다. 방통위는 민영 회사를 한개로 규정하는 것은 당초 헌법재판소 판결 취지에 어긋난다며 다민영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지분구조 △취약매체 지원 △업무 영역 등에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한 달 안에 정리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 6개월간 논의된 문제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쟁점이 좁혀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라도 있어야 한다.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우리 방송광고 시장에 가장 적합할지 심도깊은 논의가 이뤄진다면 무법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혼란은 막을 수 있다. 문제는 갈 수록 입법 가능성은 낮아지는데 관심도는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방기하다가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외양간을 고칠 수 없는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