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국회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는 방통위가 방송사에 출입하면서 공정거래 금지행위 위반여부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한 방송법일부개정법률안(한나라당 허원제 의원 대표발의)을 번안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소리소문 없이 법안이 통과된지 무려 한달 반만의 일이며, 언론노조를 비롯한 방송계 종사자들이 강하게 비난하고 나서야 문방위는 부랴부랴 사태를 진화하는 형국이다. 만약 언론노조가 이 법안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면 방통위 직원들이 자의적인 기준으로 방송사를 마음껏 출입하는 위험한 사례를 남길 뻔했다.
하지만 방송법 훼손 우려는 아직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다. 문방위가 이른바 ‘현장조사권(제85조의2 4항)’을 삭제하고 번안 의결한 법안 뿐만아니라 다른 법안들에도 방송사를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는 조항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김효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제98조의2항’의 경우, 방송사업자가 매년 회계를 정리하여 방통위에 제출하고 방통위가 이를 검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제108조 제1항 제28호’를 신설하여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방통위가 접근할 수 있는 관련자료의 범위가 구체적이지 못해 자칫 방통위에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또한, 방통위가 발의하여 3월 11일 정부 입법발의 형식으로 상정된 ‘제58조의2항’의 경우, KBS가 예산에 따른 운영계획에 경영목표, 예산, 인력, 조직, 시설과 그 밖에 공사의 운영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하며 그 구체적인 기준은 방통위의 고시에 따를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방송법 제1조와 제4조에서 각각 규정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다’,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는 조항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안이다. 이 같은 법안이 알려지자 KBS는 “KBS의 예산과 운영권은 모두 이사회에 있는데 방통위가 월권하려 한다”며 노사 모두가 적극적으로 반대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위의 세가지 사례들은 공교롭게도 독립기관인 방송사의 편성이나 운영에 방통위가 개입할 근거를 두고자 했다는 너무나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이번 정권들어 가뜩이나 운영진, 편성권, 보도·제작에 대한 초법적인 개입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이제 대놓고 ‘언론사찰’의 법적인 근거조항을 만들어두겠다는 저의가 분명하다. 우연찮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제2기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 공안검사 출신 박만·최찬묵 씨를 지명해 방송의 ‘공안검열’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평가마저 들려오는 지금에 말이다.
시나브로 방송법에 생채기가 나는 모습에 걱정을 그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열’과 ‘사찰’이라는 도구로 역대 정권들이 방송에 얼마나 큰 아픔을 주었는지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검열’과 ‘사찰’을 제도화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이유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방송사 경영진의 태만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자칫하면 방송을 순식간에 옭죌 번 했던 이번 사태는 명백히 이들의 직무유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야당이 여당을 견제하지 못하고, 방송사가 넋놓고 있는 사이 방송과 언론의 자유는 한 줌 모래처럼 사라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섬뜩한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