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의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기고] 소셜 미디어의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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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진 (서강대 정외과 교수)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후보의 트위터를 사용한 선거전략, 지진과 집중호우 등 각종 천재지변과 사고 소식 전달에서의 속보성, 2011년 중동의 재스민 혁명 등 소셜 미디어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소셜 미디어를 과연 미디어로 볼 수 있는지, 소셜 미디어가 기존의 매스미디어를 대체할 것인지 아니면 보완할 것인지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작동 원리와 역사에 대하여는 수많은 소개가 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소셜 미디어는 혹자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창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혹자에게는 유언비어와 정제되지 않은 의견이 난무하고 유통되는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소셜 미디어는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공간도 그렇다고 혹세무민을 촉진하는 공간도 아닌, 어느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금속활자의 발명이 유럽 중세 봉건제도의 몰락을 촉진하고 이성에 기초한 근대사회를 불러왔다는 주장이 솔깃하게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금속활자의 발명이 중세 종교권력의 몰락을 가져온 중요한 이유는 금속활자 자체라기보다는 성경을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는 자국어로 출판하였다는 점이다. 라틴어로 되어 있던 성경을 자국어로 출판한 사실이 사제와 신부들이 독점하고 있는 종교적 해석권력의 해체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조금 더 빠른 시기에 이루어진 고려의 금속활자 발명이 우리의 봉건제를 해체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하였던 중요한 이유는 금속활자를 통한 지식의 대중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금속활자의 발명은 근대세계의 출현을 위한 필요조건이었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소셜 미디어도 이와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소셜 미디어는 사회변화를 위한 필요조건일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서 충분조건은 아닐 수 있다. 소셜 미디어는 속보성, 연결성, 개방성을 동시에 지닌, 웹2.0의 참여, 공유, 개방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관계 형성 및 유지, 뉴스 전달과 정보 공유 등과 같은 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트위터는 140자라는 제한된 글쓰기이지만 플랫폼 자체의 네트워크 개방성과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기능으로 모바일 킬러 콘텐츠를 생산 유통시킬 수 있는 강력한 ‘미디어’이다. 페이스북이 사람이 매개의 중심이 되는 관계추구적 ‘미디어’라면, 트위터는 공통의 관심사나 이슈가 매개의 중심의 되는 정보추구적 ‘미디어’이며 ‘실시간 정보 네트워크’를 구현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가 권력관계에 미칠 영향을 추론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권력 주체별로 보았을 때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비제도권력에게 적은 비용으로 많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권력의 경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변혁적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제도권력은 중요한 정보를 상대적으로 많이 점유하고 있으며, 점유하고 있는 정보의 가치 자체에서 비롯되는 권력의 불균형은 유지될 것이다. 다만 불균형의 정도에 대한 미세 조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가 균질한 양과 질의 변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소셜미디어의 의한 비제도권력의 약진은 보다 강화될 것이다. 중동에서의 재스민 혁명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 보다 중요하게 소셜 미디어의 확산은 의제를 설정하는(agenda-setting) ‘구조적 권력’을 변화시킬 수 있다. 트위터에서 리트윗을 통해 확산되는 의제와 기존의 미디어가 설정하는 의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모 대형할인점의 ‘통큰치킨’ 논쟁이 트위터에서 먼저 제기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기존 미디어에서 소외받고 있던 의제들이 스스로 자리매김하면서 의제로 자리잡은 사례이다.
셋째, 불충분하지만 소셜 미디어는 비제도권력을 권력의 주체로 등장시킴으로써 권력을 특정한 주체로부터 탈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권력의 관계는 권력행위자와 권력수용자라는 기존의 불평등한 관계(즉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권력행위자와 권력행위자 간의 관계(즉 갑과 갑의 관계)로 변화 가능하게 되었다.
넷째, 권력 주체의 변화와 더불어 소셜 미디어가 권력 관계에 미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정보화’ 시대가 가져온 “네트워크 개인주의(Network Individualism)”를 다시 하나의 네트워크로 결집시키는 “네트워크 집단화(Network Collectivization)”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개인주의는 정보생산자와 정보수용자를 구분하고, 또한 그러한 집단 내에서 맡은 역할 또한 위계적 질서에 따라 고정되어 있음에 반해서, 네트워크 집단화는 다양한 권력 자원과 특수화된 권력 수단을 보유한 개인들 저마다 다양한 권력의 주체이자, 능동적이고 자유롭게 전환 가능한 정보생산자로서 네트워크에 평등하게 참여하고 있다. 기술 진화로 인해, 이제 각 개인들은 자기 안의 무한한 자아의 형태들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현시킬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일정한 정도의 자아실현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권력적인 속성도 보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소셜 미디어 시대의 비제도권력 주체들을 권력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원인은 권력 자원이나 특정한 권력 수단 때문이라기보다는, 네트워크화된 집단화로 인한 ‘정보 공유’와 ‘연대’라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국가는 감시의 주체가 될 수도, 소통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제도 권력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국가는 소셜 미디어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되, 이를 소통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마치 금속활자의 등장이라는 필요조건에 자국어 성경출판이라는 충분조건을 연계시켜 서구의 근대를 앞당긴 경험에서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소셜 미디어 시기로 진입하는 과도기일뿐이고 아직 진행형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필요조건으로서의 소셜 미디어가 약이 될 수도 있고, 병이 될 수도 있다. 소셜 미디어의 가능성은 지금 우리의 선택이라는 충분조건에 따라 모양을 갖추어 나갈 것이고, 이에 대한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