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과제를 남긴 종편 선정

[문보경칼럼] 더 많은 과제를 남긴 종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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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1일. 한 해를 마무리 지은 날임과 동시에 미디어 시장의 새로운 변화와 전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터진 날이다.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사용사업자(PP) 선정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지난 1년 내내 아니 길게는 3년 동안 끌고 끌어왔던 종편 선정이 마무리된 터라, 기나긴 여정이 끝났다는 느낌도 들지만 전쟁은 실상 지금부터다. 얽히고 섥힌 이해관계를 풀어야 할 후폭풍은 물론 미디어 발전을 위한 과제도 산적해 있다. 심지어 축제의 팡파르를 울려야 할 종편 사업자마저도 우려의 한숨을 짓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무려 4개의 종편과 1개의 보도 PP가 선정됐다. 앞으로 어떻게 시장에 안착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 목소리다. 선정과정에 대한 의혹과 문제 제기도 후과로 남아 있다.

가장 근본적인 의문은 종편 선정이 글로벌 미디어 기업 육성이라는 당초의 취지에 맞냐는 것이다. 종편 4개 사업자가 모두 산전수전 겪으며 방송의 노하우를 키워왔던 방송사가 아니라 신문사 중심의 컨소시엄이라는 점은 글로벌 미디어를 기다려온 사람들에겐 다소 실망과 우려를 남겼다. 종편이 4개나 선정되다보니 글로벌 미디어는커녕 과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존재한다. 협소한 시장에서 과다 출혈경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들도 선정 결과 발표 후, 너무 많은 사업자 숫자에 놀라움과 불만의 기색이 역력하다. 또 다른 당사자인 출자자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기업들이 양해각서를 교환했던 모든 컨소시엄에 실제로 투자를 집행할지는 미지수지만, 이번 종편 및 보도 채널 선정 결과는 산업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종편사업자 선정결과가 광고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논란이 시작됐다. 국내 방송광고 시장은 이미 정체기를 맞고 있다. 방통위가 새해 업무보고에서 GDP 대비 1%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현 상황에서는 역부족이다. 선정 사업자들은 3~5년 내 흑자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들의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4000~5000억 원의 광고가 유입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가능할지, 가능할 경우 기존 사업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암담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수입 콘텐츠 가격 또한 걱정거리다. 종편 사업자가 당장 한꺼번에 모든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기는 쉽지 않은데다 초기 시장을 잡기 위해 해외 우수 콘텐츠를 앞 다퉈 들여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 육성이 아니라 글로벌 미디어 배불리는 꼴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개국 전에 수립해야 할 정책도 산적하다. 채널번호와 수신료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광고 규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종편 채널은 낮은 번호로 배정해 지상파방송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케이블TV방송사(SO)는 채널편성은 플랫폼사업자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수신료는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또 광고 시간의 20%를 SO에 할당하는 PP의 광고 정책도 그대로 적용돼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도 있다. 광고 판매를 지상파방송사처럼 판매대행 회사를 통하도록 할 것인지, 직접 영업을 하도록 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미디어업계는 더욱 심각하다. 방통위가 주창해온 대로 미디어시장의 빅뱅은 본격화될 것이지만, 과연 긍정적인 방향으로 빅뱅이 일어날지는 불투명하다. 기존 방송 사업자들은 사업자들대로 혼란이다. 협소한 국내 미디어시장에 기존 지상파와 맞먹는 종편이 4개나 더 탄생함에 따라, 공멸의 경고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존 미디어와 신생 종편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본연의 의무를 등지고 시장을 흐리는 사태도 예견된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콘텐츠의 선정성도 걱정된다.

 

결국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이 미디어 시장에도 그대로 도입돼 규모가 크고 투자여력이 있는 사업자들이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도 다수의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이후엔 시장의 법칙에 따라 사업자 수가 정리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약속대로 2010년 내에 종편 선정을 마무리 한 방송통신위원회는 헤아리기도 힘든 더 큰 숙제에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우려 가운데 희망이라면 경쟁을 통한 콘텐츠 경쟁력이다. 사실상 종편으로 미디어 업계는 난생처음 제대로 된 경쟁이라는 사태에 놓이게 됐다. 지상파는 지상파대로 MPP들은 이들대로 콘텐츠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상파는 디지털전환·수신료인상과 맞물려 다채널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MPP들은 흥행몰이를 할 자체제작에 투자를 대폭 늘려가고 있다. 글로벌 콘텐츠 업체들도 한국 시장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선정성과 시청편의를 저해하는 무분별한 광고를 잘 제어한다면 사실상 시청자들에게 선택권이 넓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을 것으로 우려되지만 빅뱅으로의 폭발은 시작되어 버렸다. 정부의 정책적 결정에 관여를 했건 하지 않았건 이제 미디어 빅뱅은 모두의 숙제로 남겨졌다. 이번 선정에 대해 가타부타를 논한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우려, 지금의 숙제가 미디어 모두의 숙제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