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인권보호와 언론의 자유는 하나입니다.

[기고] 국민의 인권보호와 언론의 자유는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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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주(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연평도 피격 사건으로 국내외가 몹시 어수선합니다. 국민들의 마음도 덩달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뒤숭숭합니다. 아니, 뒤숭숭함을 넘어 국민들은 이제 몹시 불안 합니다. 폭격 맞은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연평도 주민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자신이 살고, 지키고 있는 생활의 터전은 안심할 수 있는지 정확한 상황인식조차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비상시에 군의 대응이 무기력하게 여겨지고 행정도 언론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를 자꾸 겪으니 누구를 믿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자조를 내뱉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상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게 해주는 것이 정부의 가장 큰 일입니다. 그것을 하라고, 자신과 가족과 사회의 안녕을 위해 국민들은 적지 않은 세금도 기꺼이 감당하며 그 사용까지도 정부에 위임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국민들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명료한 것입니다. 정부는 나를 위험에서 지켜주고 나의 안녕을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국민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 준비하고 각오해야 한다면, 국민의 의무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근거도 약화되고 말겠지요. 거기에 더해 위정자가 스스로 권력이 되고 국민 위에 군림하고 관리자가 되는 것이 자신들의 일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그 정부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민간인 사찰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을 때 국민들은 경악하면서도 몇 년 전, 인수위의 언론인 성향분석보고 파문에서 어쩌면 이미 그런 조짐을 무의식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김종익씨 경우처럼 이미 모든 것을 잃거나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혹시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누군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더하여 이러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까지 참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2010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사찰문제, 언론인 사찰문제는 연평도 피격사건에 묻혀 지나버릴 수 없는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국민들은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체험하고 있습니다. 87년 시작된 자유화의 물결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고, 2000년 이후 우리는 마치 모든 자유가 저절로 주어진 듯이 지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표현하는 자유’가 하늘로부터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고통을 지불한 결과라는 걸 다시 돌아보게 되는 때입니다.

 

얼마 전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국내중앙정보국(DCRI)에 탐사보도 기자에 대한 사찰을 지시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로 입지가 좁아진데다가 언론인 사찰의혹까지 드러나면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비민주적 행태가 다시 한 번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대선자금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의 취재정보가 담긴 랩탑 컴퓨터와 테이프, 위치확인시스템(GPS)을 도난당한 사건도 이어져 언론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고, 르몽드지가 경영난으로 제3자 컨소시엄으로 넘어가기 직전 편집장을 불러 국영기업이 포함된 친정부 컨소시엄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던 일 등 일련의 사건들이 중첩이 되어 앞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치생명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정권을 잡게 되면 언론에 의한 감시를 받아들이기보다 언론을 길들이고 조종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는 것은 국내외를 불문하겠지요. ‘국경 없는 기자회’의 발표에 따른 최근 프랑스의 언론자유 순위는 세계 44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2007년 31위, 2008년 35위, 2009년 43위, 2010년 44위로 떨어진 프랑스의 언론자유의 순위가 자메이카나 파푸아뉴기니보다 못하다는 평가에 프랑스 언론인들이 몹시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언론의 현실이 언론인 사찰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한국의 상황과 비교되는 지점이 많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언론인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 언론이 자연스럽게 순치되어 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전쟁에 대한 걱정만큼이나 언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때 이러한 목소리가 언론계 내부에서 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왜곡보도는 보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언론이 제 목소리를 잃는 것은 단순히 소식 전달기능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건강에 심각한 해가 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