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솔직히 TV를 그리 많이 보지는 못한다. 근무시간에는 당연히 그렇지만 클래식 음악을 심하게 좋아하는 까닭에 퇴근 후에도 여러 음악회에 다니느라, 그리고 관련 글들을 집필하느라 나는 항상 ‘in action’ 상태이다. 최근에는 여러 지면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우리 회사의 일이 지극히 많아지면서 야근도 늘어나서 평일에 다섯 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극히 드물게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약속이 있어서 일찍 퇴근했다가 급히 취소된 경우로, 저녁에 깨어계시는 부모님을 뵐 수 있는 매우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이 날은 평소에 누리기 어려운 부모님과의 대화와 함께 TV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최근에 이런 기회가 주어진 적이 있었다. 그 때 부모님은 TV에서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계셨는데, 한 교사가 사망하게 된 원인을 찾아보는 내용이었다. 이 교사는 몸에 여러 문제를 갖고 있었다. 난청, 감기, 성대 이상, 치통 등. 이중에서 그가 사망하게 된 원인은 놀랍게도 치통 때문이라고 했다. 치통의 바이러스가 목을 부어오르게 해 호흡 곤란을 일으키게 하고, 결국 질식사 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물론 매우 드문 케이스이기는 했지만, 몸의 한 곳에 이상이 있으면 한 곳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전이되어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이건 암이 따로 없지 않은가. 치통이 없는 나는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칫솔질을 더욱 열심히 하리라 다짐했다.
환절기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 약해지는 것을 많이 보곤 한다. 나는 어렸을 때에는 이런 저런 잔병치레가 많았지만 언제부터인가 겨울에도 감기 한번 안 걸리는 보기보다 강한 체질이 되었다. 설사 걸렸다 해도 약 좀 먹으면 놀랍게도 하루 이틀이면 다시 회복되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창궐하던 작년 겨울에는 예방주사도 맞지 않았지만 감기 한번 없이 건강하게 보냈다.
그런데 올 해는 나의 몸에서 여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봄부터 조금씩 이상 징후가 보였던 귀가 점점 불편해져서 여름에 병원을 찾았더니 중이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MRI 검사 때문에 온 몸과 팔과 다리를 꼼짝달싹 못하도록 꽁꽁 묶고 건조한 검사실에서 숨을 헐떡여가면서 30분을 버텨냈다. (폐소공포증이 있으시다면 MRI 검사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 검사 결과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어서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음악을 심하게 좋아하는 나로서는 수술 후 모든 신경이 귀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으며, 정신적으로도 참 견디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랬더니 이젠 목이 뻐근해지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신경성 편두통이었다. 두통약을 먹어도 통증이 잘 가시지 않아 얼굴은 온통 찌푸린 상이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런 증상은 머리를 마사지함으로써 어느 정도 완화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 머리를 자꾸 문지르는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하면 탈모가 예방된다던데, 남들이 보기엔 탈모 때문에 그러냐고 딱 놀림 받을 형국이다. 어쨌든 덕분에(?) 탈모 걱정을 덜게 생겼다.
이렇게 몸이 힘들어지고 정신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요 며칠 갑자기 추워지다 보니 어느새 감기가 찾아왔다. 10분 간격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모든 공기를 빼내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이젠 눈 뜨고 정신 차리는 것도 힘이 드는,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피로로 일상생활조차도 버거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때에는 어느 정도 완화되어 이렇게 자리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은 되었다. 눈이 펑펑 내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면서 주변에 기침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 시기에 몸 관리를 잘못하면 감기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고통이 한꺼번에 찾아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방송기술인들은 보란 듯이 건강을 굳건히 지켜내길 바란다. 연말을 맞아 한꺼번에 밀려드는 무수한 일들을 모두 일거에 해치우고 망년회에서 즐겁게 잔을 부딪치기 위해서라도.
EBS 편집위원 송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