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번호통합, 각기 다른 서로의 속내

[강희종칼럼] 010번호통합, 각기 다른 서로의 속내

623

 

강희종 / 디지털타임스 정보미디어부 기자


   010 번호통합 정책이 통신 업계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010 번호통합 정책의 골자는 현재 남아있는 01X(011, 016, 017, 018, 019) 이동전화 번호를 어느 시점에서 010으로 모두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소비자와 정부, 이동통신사업자간 입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사실 번호통합정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번호통합정책이 논의된 것은 2001년부터이며 2002년 본격적인 정책 개발을 거쳐 2003년부터 시행됐다. 당시에는 새로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기존 01X 번호를 사용하지 못하고 010 번호를 쓰도록 했다.

이후 2004년부터는 번호이동제도가 도입되면서 조금더 복잡해졌다. 사업자간 번호이동은 자유로웠으나 2G 가입자가 3G로 번호이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3G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010 번호를 사용해야 했다.

2004년에는 새로운 번호통합정책이 만들어졌는데 “010 번호가 80%에 이르는 시점에 010번호통합을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핵심이다. 010 번호 가입자는 지난 2월 기준 전체 이동통신가입자(4857만명)의 80.3%인 3900만명을 넘어섰다. 이때부터 방송통신위원회는 번호통합정책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010 번호통합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왜 당초에 010 번호정책을 만들었을까부터 되짚어 보는 것이 순서다. 010 번호 정책은 01X 번호를 대신 010 번호를 새로 만들어 장차 010 하나만 쓰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과 01X 번호의 고갈 방지를 위해서다. 010 번호 정책 도입을 논의할 때 011 번호의 브랜드화가 큰 이슈가 됐었다. 국민들이 011 번호를 선호하면서 특정 사업자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했다. 011 번호가 하나의 브랜드가 돼버린 것이다. 실제로 SK텔레콤은 011번호를 앞세운 마케팅을 사용하기도 했다. KTF(현재의 KT)와 LG텔레콤(현재의 LG유플러스)은 011번호의 브랜드화가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번호 자원의 고갈도 우려됐다. 1996년 PCS서비스가 상용화되면서 320만명이던 가입자가 2003년도에는 3234만명으로 폭증하여 일부 사업자의 번호가 부족하기 시작했다. 또, IMT-2000(3G)서비스를 제공하는 3개 사업자가 사용할 신규번호 확보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같은 배경에서 010 번호 통합 정책이 시행됐으며 그로부터 8년이 지나 어느덧 가입자의 80%가 010 번호를 쓰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당초 010 번호 정책이 만들어졌던 2002년보다 더 상황이 복잡하게 됐다.

이미 많은 가입자들은 010 번호로 통합된다는 대리점 직원의 말을 듣고 010 번호로 바꾼 상태다. 그런데 아직도 900만명의 사람들은 01X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01X 번호를 바꾸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몇날 몇시부터 01X 번호를 사용할 수 없으니 무조건 010 번호로 바꾸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010 통합반대운동본부와 같은 시민단체는 01X 번호는 가입자의 자산이라고 주장한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서민기 대표는 “01X 번호를 사용한 이용자들은 적게는 5년 이상 많게는 20년 이상을 사용한 사람들이다. 긴 시간동안 쌓아왔던 인적네트워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라는 입장이다.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상임이사는 “2G의 시장지배력이 3G로 전이되는 것을 막겠다는 정책적 목표도 실현이 됐고 번호자원의 고갈이라는 우려도 시급하지 않다”며 010 번호통합 정책의 포기를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와 시민단체의 이같은 압박은 방통위 등 정부를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다. 법적으로 이동전화번호가 가입자의 것인지 아니면 국가에 귀속되는 것인지는 세심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정부가 고민하는 지점은 법적 영역보다는 정치적인 쪽에 더 가깝다. 특히,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당 참패의 원인으로 ‘국민과의 소통 부족’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010번호정책을 강행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결정이 아니다.

이동통신사업자들도 저마다 이해 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3G 전환 정책에 적극적인 KT는 010 번호통합의 조속한 시행을 바라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1.8GHz 주파수를 반납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2G 가입자가 남아있다면  주파수 재할당과 유지에 수천억원의 비용을 써야 한다. LG유플러스도 010 번호 통합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의 01X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가장 많은 01X 번호 가입자를 갖고 있는 SK텔레콤은 사회적 합의를 거친 단계적인 010번호통합정책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010 번호통합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가입자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충성도 높은 011 번호 가입자가 450만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이 010 번호로 통합될때 다시 SK텔레콤을 선택할지 장담할 수 없다.

방통위는 이달중 010 번호통합 정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소비자 편익과 사업자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지혜가 방통위에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