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방송 주파수 경매정책, 소 잃고 외양간도 잃는다

[사설] 아날로그방송 주파수 경매정책, 소 잃고 외양간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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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마지막 주, 주파수 경매제를 포함한 전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와 더불어 지상파의 아날로그 방송에 사용되던 698~806MHz 주파수 대역이 국가에 반납될 시점도 이제 6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이른바 황금주파수로 불리는 700MHz 주파수를 방송사가 아닌 통신사가 차지하게 되는 날도 이제 시간문제인 듯하다.

지난 몇 년간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면서도 그랬듯이,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주파수 경매를 추진함에 있어서도 방송사들의 입장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오로지 ‘산업논리, 시장논리’에 매몰되어 정책을 집행한 결과가 바로 지상파 아날로그방송 주파수의 경매결정이다. 하지만 아날로그방송 주파수를 경매하기로 한 잘못된 정책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우선, 비싼 경매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전가될 것이다. 전파법 개정안은 주파수 경매제의 근거를 ‘경쟁수요가 있는 주파수를 시장기능을 통해 가치를 산정’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경쟁수요가 있다는 말은 곧 주파수를 수단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많은 기업들이 막대한 비용을 경매대금으로 지불하고서라도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경매대금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따라서 기업들은 그 투자금액을 소비자들이 내는 이용료로 보상받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둘째, 시청자를 위한 무료 보편적 서비스의 영역이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사용료를 받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보편적이지 않은’ 서비스이다. 케이블TV와 IPTV도 방송의 영역이지만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기에 ‘보편적 서비스’라고는 불리지 않는다. 보편적 서비스란 ‘공익을 위해 국가가 전 국민에게 빠짐없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지금껏 지상파 방송이 지켜오던 영역이며 주파수 반납 및 경매는 보편적 서비스가 그 가치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미래의 방송발전을 위한 테스트 베드가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주파수 경매제를 실시한 미국 방송사들의 경우, 통신기술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무기력하게 방송주파수를 반납한 후에야 차세대 방송기술인 3DTV, HDTV, UHDTV, 모바일TV을 제공할 주파수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쉽게 말해 통신사들은 광장에서 다양한 상업적 시도를 하는 반면, 방송사들은 좁은 땅 덩어리 위에서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품질 저하를 감수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할 지경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넷째, 경매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번 빼앗긴 주파수를 되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방송사의 매출은 통신사의 매출 규모에 비할 바가 안 된다. 또, 기존의 할당대가에 비해 훌쩍 뛰어버린 경매대금을 지불하는 것이 방송사로서는 매우 큰 손실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주파수의 가치는 점점 상승해서 그에 상응하는 가격도 함께 치솟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번 놓친 주파수를 되찾겠다는 희망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다섯째, 방송망 자체가 통신사가 아닌 제3의 망 중계업자에게 넘어갈 소지도 높다. 영국BBC는 1997년, 디지털전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사의 방송망을 2억5천만 파운드에 매각하고 연 5천만 파운드의 송신대행료를 지불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방송망을 매입한 캐슬타워는 수년 후, 8억 파운드에 가까운 차액을 남기고 방송망을 타 기업에 되팔았고, BBC는 아직도 연 5천만 파운드 이상의 송신대행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는 공공재인 전파가 사적 소유물로 전락함으로써, 오히려 공공에 막대한 비용부담을 지우는 딜레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극명한 사례이다.


주파수 경매제 도입은 마치 공용놀이터에 관리인이 찾아와서는 가난한 집 아이들을 한쪽으로 몰아넣고 부잣집 아이들에게만 넓은 터를 내주는 것과 같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방송사들이 부족한 방송망을 조달하기 위해 막대한 추가비용을 지불하고 사기업에 손을 벌려야할 지도 모른다. 이 아이러니의 1차적 원인은 희소자원인 공공의 주파수 정책을 근시안적인 시장논리만으로 접근한 정책입안자들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상황이 그대로 내년에 현실화된다면 방송을 현업으로 하고 있는 우리들 또한 상황을 방기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지상파 방송사는 이미 케이블TV에 밀려 직접수신가구 비율이 20%에 밑돌고, IPTV 서비스의 주도권도 통신사에 내주는 등 시장 선도자의 지위를 지난 10여 년간 서서히 빼앗겨왔다. ‘주파수 경매제’는 이런 지상파 방송사들을 향한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모바일TV, UHDTV 등 방송의 무한한 변신이 시도조차 되기 전에 실험실의 불꽃으로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경고 말이다.

앞으로 6개월, 700MHz 주파수를 지키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온 방송기술인들을 포함한 방송종사자들은 방송 주파수의 보호를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마저 잃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