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육박하는 폭염에서 5일 동안 70여 시간 넘는 과로”
“스태프 숨진 자리에 라면 한 그릇 남아 있어”
“사망 원인 밝혀지지 않았지만 장시간 노동 관행이 부른 참사일 수 있어”
[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촬영 스태프가 8월 1일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원인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특별한 지병이 없었던 만큼 ‘드라마 현장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은 2일 성명을 통해 “사망한 스태프는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 동안 야외에서 76시간에 달하는 노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폭염 속에서 절규하고 있는 드라마 제작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드라마 제작은 늘 쫓기며 일이 진행되고 많은 대기 시간과 제대로 몸을 기대 쉴 수 있는 공간조차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며 “(근무 시간이) 52시간으로 바뀐 것이 지난달이지만 현장에서는 버젓이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제작 현장은 예외여야 하는가”라고 꼬집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그동안 특례업종에 속했던 방송사 역시 지난달부터 주 6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으며, 내년 7월 1일부터는 주 52시간 근무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노사 간 합의를 이룬 주요 방송사는 아직까지 단 한 곳도 없으며, 방송 제작 현장에서 ‘68시간 근무’는 여전히 남의 얘기다.
언론노조 SBS본부(이하 SBS 노조)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그가 숨진 자리엔 미처 뜨지 못한 라면 한 그릇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며 “방송 현장에 못다 핀 꿈을 남긴 채 스러진 안타까운 청춘 앞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고 밝혔다.
SBS 노조는 “노조 파악한 바로는 고인은 비록 마지막 근무일 이후 30여 시간의 휴식이 주어졌다고는 하나, 그전까지 20시간 연속 노동을 포함해 5일 동안 70여 시간이 넘는 과로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연일 40도 가까이 육박하는 재난 수준의 폭염이 계속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노동 조건은 더 가혹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어 아직까지 사망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장시간 노동 관행이 부른 참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SBS 노조는 ‘사람 잡는 제작 환경’을 즉각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외주제작사 드라마라고 하지만 SBS 통해 나가는 이상 노동 실태 관리 책임에서 SBS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그동안 미온적 태도로 일관해온 사측은 비인간적 제작 관행을 철폐하고 방송 제작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라”고 주장했다.
2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드라마 환경 좀 바꿔달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어제 ‘서른이지만’ 촬영 스태프가 집에서 사망했다”며 “7월 28일, 29일, 30일 폭염에 연속 촬영을 진행했으니 과로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는 경찰서에서 하겠지만 저희 스태프들은 살려고 일한다”며 “환경 좀 바꿔달라. 제발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언론노조는 고용노동부에 “지난 2월 실시한 드라마 제작 현장 특별 근론 감독 결과를 하루 빨리 발표하라”고 요구한 뒤 방송통신위원회를 향해 “사고가 빈번한 방송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해 나서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