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을 위해 잠시 비워 둔 시간

생방송을 위해 잠시 비워 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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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방송을 위해 잠시 비워 둔 시간

    MBC 총파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오유나-



무한도전 ‘본방사수’를 멈춘 지 벌써 700시간이 흘렀다. 주말의 습관이 되어버린 ‘무도 본방사수’를 잠시 뒤로 하고 본격적인 ‘공영방송 MBC 지키기’를 위해 함께 투쟁하고 있는 치열한 6주간의 기록. 그러나 무한도전 사수를 잠시 멈춘 지금, 울고 웃고 가슴 찡해 하는 것은 여전히 그 때처럼 변함없다. 잠시 멈춘 시간 속에 MBC 총파업은 재방송이 아닌 실시간 생방송으로 우리 삶 속에 생생히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우리 삶은 온통 재방송이었다. 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이 잡혀가고 인터넷으로 경제위기를 예측했던 네티즌은 구속을 당했다. 경영을 잘 해 회사에 이윤을 남겼던 공영방송 사장이 오히려 모함당해 그 자리를 떠나야 했고, 낙하산 관제사장 자리를 애걸하며 MBC 청소부를 자처한 자는 수치도 모른 채 ‘큰 집’에서 쪼인트를 까였다. 그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리던 어느 뻔뻔한 자는 황급히 외국으로 도망을 치더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어둔 밤을 틈타 몰래 되돌아오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그 사이 정권의 탄압을 받아 위태롭게 휘청대던 공영방송 체제는 그 근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땡전뉴스를 방불케 하는 땡이뉴스는 화려하게 부활했고, 국민의 수신료를 아낌없이 받아가던 방송사의 음악프로그램은 한 재벌기업의 창업주를 위해 흔쾌히 무대를 내어주기까지 했다. 관제로의 회귀, 재벌을 위한 낯간지러운 찬양. 공영방송의 시간은 그렇게 거꾸로 흘렀다. 우리 생애를 통틀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재방송의 악몽이 우리 시대를 가파르게 통과하고 있다.


도무지 보아 넘겨줄 수 없는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보고 들어야만 하는 애처로운 이 시대 시청자의 운명. 그러나 사람들에겐 하나의 보루가 있었다. MBC라는 세 글자. 이명박 시대의 우리들에겐 MBC는 마땅히 지켜야만 하는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배경의 진실을 알려주고, 검사와 스폰서의 어두운 비밀을 밝혀주며, 또한 세상의 바보들에게 ‘빵꾸똥꾸’ 라고 마음껏 웃으면서 화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니까. 그렇게 이명박 정권의 집요한 공영방송 장악 공세 속에도 꿋꿋이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MBC를 위해 사람들은 하나 둘씩 마음의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MBC 노조는 위기에 처한 공영방송 MBC와 자기 자신, 그리고 시청자를 위해 총파업에 돌입했다. ‘저를 지키고 싶습니다. MBC를 지키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지키고 싶습니다’라는 진실어린 울림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시킨 채로. 그리고 오늘로 꼭 31일째 MBC 노조의 파업은 이근행 위원장의 단식으로 이어져 힘겹고 절절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MBC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재방도 좋고 삼방도 좋으니 이 파업을 이겨내라고. 공영방송 MBC를 함께 지키자고. 그리고 MBC로 정성스레 음식을 보내고, 돼지저금통을 깨서 성금을 전하고, 인터넷과 아이폰으로 끊임없는 성원을 보낸다. 본 것을 또 보고 이젠 또 봐서 볼 것이 없어진 시청자가 할 수 있는 일반적 혹은 상식적인 자세는 분명히 아니다. 저 멀리 지역으로부터 아이의 손을 잡고 여의도를 찾아와 MBC 파업 촛불문화제에 참가해 소리 높여 함께 파업의 노래를 부르는 엄마들의 모습 또한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그럴 것이다. 분명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상하고 이상한 풍경. MB가 보면 정말이지 화가 나고 이상스럽기만 할, 그러나 MBC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이 놀라운 일들. 지금 MBC를 지탱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의 정체는 그렇게, 바로 시청자이다. 우리 자신이다.


이번 주말, 우리는 또 한 번 무한도전 본방사수를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MBC 프로그램들의 재방송을 보고 또 봐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재방송을 기다리는 우리는 안다. 정권으로부터 언론이 말할 권리, 시청자가 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모두의 지난한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며 이보다 더 아름다운 생방송은 아마 볼 수 없으리란 것을 알기에 우리는 다음 방송을 위해 이 시간을 잠시 비워둔다. 이 싸움의 끝엔 반드시 마음껏 웃고 울고 즐길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방송이 MBC를 통해 곧 우리를 찾아오리란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