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근무제 시행…별다른 대책 없는 방송사

52시간 근무제 시행…별다른 대책 없는 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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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다. 그동안 특례업종에 속했던 방송사는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이달부터 주 6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으며, 내년 7월 1일부터는 주 52시간 근무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노사 간 합의를 이룬 주요 방송사는 아직까지 단 한 곳도 없으며, 방송 제작 현장에서 ‘68시간 근무’는 여전히 남의 얘기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은 ‘지상파방송 산업 노동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상파 종사자 5명 중 1명은 주 52시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 응답자 중 40.9%는 전반적으로 노동시간이 길다고 답했으며, 1주일 평균 업무 시간은 ‘기자>PD>제작 관련’ 순으로 조사됐다.

또 1주일 평균 노동 시간은 SBS 등 민영방송이 KBS 등 공영방송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이하 SBS 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 실태 설문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사에 따르면 3명 중 2명 이상이 주 52시간 이상 근무하고, 3명 중 1명은 68시간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사 연차별로는 연차가 낮을수록 초과 노동시간이 많았다. 5년 이하 조합원의 경우 노동시간이 주 100시간 이상에 달한다는 응답이 15.2 %, 주 80시간-100시간은 20%, 주 68시간-80시간이 25.7%로 주 68시간을 넘는 경우가 60.9%에 달했다. 5~10년차 조합원 역시 주 100시간 이상이 8.4%인 것을 비롯해 주 68시간을 넘는 경우가 45.6%로 나타났다.

제작부서의 과도한 노동시간도 확인됐다. 드라마 본부가 주 100시간 이상 노동이 42.3%로 가장 많았고, 예능도 주 80시간 이상 노동이 74%로 나타났다. 주 68시간 이상도 시사교양 49.8%, 보도 45.1%를 차지했다.

초과 노동시간을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12%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직종별로 봐도 초과 노동을 조합원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는 답변은 소수에 그쳤다. SBS 노조는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본다면, 재량 근무의 특성상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무제한 ‘과로’와 보상 없는 ‘공짜노동’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BS와 MBC, SBS, EBS 등 지상파 4사 노사는 산별교섭 상견례를 진행한 뒤 방송공성정분과, 제작환경개선분과, 방송산업진흥분과 등으로 나눠 매주 분과별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조 측은 사측에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6월 29일 긴급 성명을 통해 “얼마 전 당‧정‧청이 경영자들의 눈치를 보며 법 시행 전 6개월 처벌 유예기간을 주자 늑장 대응의 비난을 받던 경영진이 한숨을 돌린 듯하다”며 “경영진은 이제껏 허비한 시간을 반성하기는커녕 협상을 중단하거나 늦추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노동시간 단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SBS 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이 단순한 노동시간의 문제가 아닌 SBS 경영모델의 전면적 쇄신을 전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속히 대안 마련에 나설 것을 노사협의회를 포함해 수차례 지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사실상 무차별적인 공짜 노동을 전제로 한 근무 체제와 법적 기준에 한참 미달하는 불법적인 시간외 수당 보상 기준을 또다시 제시했다”며 “책임은 전적으로 사측에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 노조)도 “노조는 당장 노동시간을 줄이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과도기적으로 여러 종류의 유연한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까지 전달했지만 결과를 실망스러웠다”며 “노사 서면 합의 없이 불법 상태로 7월 1일을 맞게 됐다”고 꼬집었다.

다른 방송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최근 방송사 내부에서는 재량근무제 도입을 가장 큰 대안으로 여기고 있는 분위기다. 재량근무제는 근로시간을 비롯해 업무수행방법까지 근로자의 재량에 맡기고 노사 간 일정 기간의 노동시간을 합의하는 것으로 실제 노동시간을 측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재량근무제가 오히려 ‘보상 없는 노동 착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SBS 노조는 “법적 한도를 넘어서는 초과 노동이 빈발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사전에 정해진 정액만 이뤄지는 노동 착취가 일상화될 수 있다”며 “일본의 경우 재량근무제 도입 이후 언론계에서 과로사가 속출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MBC 노조는 “노사가 함께 모인 자리에서 최종 목표는 노동시간의 실질적 단축이며, 재량근로시간제를 비롯해 법을 초과하는 유연한 제도는 과도기적, 한시적 대응일 뿐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며 “당장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의 노동 인권 침해를 줄이기 위한 편성 전략의 수정과 제작 지원 방안, 예능 프로그램 제작의 살인적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제작 지원 방안, 더 나아가 방송 산업의 거대한 지각 변동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