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ver-the-top, 이하 OTT) 사업자인 넷플릭스가 국내 방송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놓고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7월 4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하 KISDI) 주최로 열린 ‘글로벌 OTT 사업자 비즈니스 전략 및 국내 시장 전망 세미나’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은 “넷플릭스가 거대 자본과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로 케이블이나 인터넷TV(IPTV) 등 국내 유료방송 시장을 잠식해 결국에는 미디어 생태계 자체를 파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푹(POOQ)을 운영하고 있는 콘텐츠연합플랫폼의 이희주 본부장은 “현재 국내 OTT 사업자들은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OTT 사업자와의 전쟁에서 부산까지 밀린 상황”이라고 토로한 뒤 “지난 2014년 11월 지금과 비슷한 토론회에서 동일한 내용을 논의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글로벌 사업자가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의 금액을 가져가고 있는지 정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망 사용료 부분도 언급했다. 현재 유튜브로 발생하는 트래픽은 네이버나 카카오, 아프리카TV 등 국내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을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은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 망 사용료를 거의 내지 않고 있다. 반면 네이버가 지불하는 연간 망 사용료는 약 700억 원이고, 다른 국내 콘텐츠 업체들 역시 연간 100~300억 원 규모의 망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다. 이 본부장은 “글로벌 사업자들이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서비스를 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라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윤용 CJ헬로비전 사업협력실 실장은 “△지상파 등 사업자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하는 유튜브나 아프리카TV 사업자 △넷플릭스, 옥수수 등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 유통하는 OTT 사업자로 나눠 본다면 TV 쪽은 아직까지 직접적인 영향이 없고, 유튜브는 이미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했다. OTT 쪽은 아직까지는 버틸만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내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콘텐츠가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석봉 JTBC 정책팀장은 “넷플릭스를 해외 유통 창구로 본다면 단기적으로 ‘단비’처럼 느껴지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사업자‧이용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콘텐츠 판매자 입장에서 걱정스러운 부분을 언급했다.
반면 황성연 닐슨코리아 박사와 이상우 연세대 교수는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입의견을 달리했다. 황 박사는 “닐슨코리아에서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TV는 식사, OTT는 간헐적 단식’ 수준”이라며 “OTT 서비스의 성장률이 높기는 하지만 현재 방송 시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황 박사는 “사실 이용자 즉 소비자 입장에서 주문형 비디오(VOD)를 먼저 요구한 적이 없다. 사업자들이 자체 전략으로 VOD를 내놓았고, 결국 VOD가 본방송(LIVE)을 잡아먹는 경우가 된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소비자들의 습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TV를 보는 습관이 바뀌기 전에 방송사를 비롯한 콘텐츠 사업자들은 방송의 가치가 LIVE에 있고, 이 LIVE 방송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우 연세대 교수는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현 상황을 분석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신규 미디어가 들어오면 콘텐츠 생태계가 붕괴되고, 문화가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를 매번 내놓는다. 하지만 이 논의 과정에 소비자는 빠져 있다”며 “결국은 소비자 선택의 문제로 소비자 만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고, 그 방향으로 가는 사업자들만이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영화 시장을 예로 들었다. “1987년 외화 직배가 시작될 당시 국내 영화인들은 문화가 종속될 것이라며 신촌 한 영화관에 뱀을 풀어놓는 사건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나라 영화 시장이 붕괴됐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물론 92년까지는 국내 영화 점유가 10% 정도까지 하락했지만 93년 이후 점차 증가해 현재 할리우드와 맞먹을 몇 안 되는 영화 시장을 성장했다”며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 콘텐츠 제작 시스템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그것이 콘텐츠 시장 자체의 성장을 견인한다면 시장 경쟁의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이성춘 KT경제경영연구소 상무는 “세미나장에 오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넷플릭스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전망하시는 것 같다”면서 “콘텐츠 시장 자체에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다면 그런 면에서 국내 개별 사업자의 힘만으로는 글로벌 사업자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적 지원 같은 제도적인 부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