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늦여름!

어느 해 늦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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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문화방송 방송기술센터 차장 이기성

 유난히 눈도 많았던 겨울이 가고, 어김없이 다시 따스한 봄기운이 솔솔 분다. 여기저기 꽃도 피고, 춘객들이 산이다 들이다 구경 다니는 시기가 왔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되면 어느 해인가 늦여름에 겪었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난다. 

 입사 동기인 친구와 TVR(TV중계소)을 점검하러 일주일에 한 군데 정도는 점검을 다녀야 했다. 주 송신소에서의 전파가 미치지 않는 곳에 TV를 시청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위해 대부분의 TV중계소는 산에 있다. 여름철에도 땀 뻘뻘 흘리며 산에 올라 중계기를 점검한다. 더운 여름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등산을 한다고 생각하면 뭐 어려울 것도 없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몇 번을 오르내리는 경우도 있다. 

 가을이 다가오면 산에는 뱀도 독기가 생기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곤충들도 독기가 한 층 더 오르고, 집을 짓고 가을을 준비한다. 그 지역은 유난히도 벌집이 많은 지역이었다. 높지는 않지만 그곳을 관리했던 선배들도 벌에 아주 혼쭐이 났었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아무 생각없이 산에 올라 땀을 닦으며 중계소의 문을 연 순간, 뭔가 불안한 소리가 들린다. 윙~~~! 아! 이 소리는 벌! 하는 순간, 아무 생각 없었다.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 뿐이었다. “야 ! 튀어!” 나는 소리를 질렀고 그냥 뛰었다. 앞만 보며 뛰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내 호들갑에 놀란 친구는 허겁지겁 기어오고 있었다. 앗! 미안! 친구를 챙기지 않았다. 순간 내 앞에 소나무가 나타났다. 쿵! 소나무에 어깨를 부딪쳤다. 아플 새도 없이 뛰었다. 친구는 아주 빠르게 기어오면서 뛰었다. 한 20여 미터쯤 뛰어 나왔다. 친구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살았다’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누군가의 묘 뒤에 숨어있던 친구가 한 1미터쯤 펄쩍 튀어 올랐다. 아마 그냥 위로 뛰라고 하면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친구는 엉덩이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얼른 친구의 엉덩이를 돌아보니 새끼손가락만한 말벌이 친구의 엉덩이를 쏜 것이다. 다시 악! 벌이 친구의 팔에 앉아 한 방을 더 쏜 것이다. 그리곤 유유히 날아갔다. 친구가 너무 불쌍했다. ‘벌’ 하는 순간 나는 친구도 버려두고 소리만 지르고 홀로 뛰어 나와 미안했고, 벌이 친구만 쏴서 미안했다. 나도 쏘였어야 했는데 너무 미안했다. 불쌍한 친구의 엉덩이의 벌침을 빼기위해 친구의 하의를 벗기고 벌침이 작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 얼굴 엉덩이에 들이대야 했다. 

 헐! 자세가 영~. 몇 미터 뒤에서 보면 아주 민망한 자세였다. 우리 둘은 그 자세에서 순간 아픈 것도 잊고 박장대소했다. 벌은 중계소의 송풍구에 아주 큰 벌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그 당시는 중계소의 점검이 꼭 필요한 시기였다. 아마 중계소 검사가 임박해서 자료를 제출하는 것 때문일 것이다. 꼭 안으로 들어가 검사 준비를 해야 했기에 벌을 제거하고 일을 해야 했다. 119에 전화하니 그렇게 멀리는 올 수 없단다. 우리 스스로 해야 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우의와 비료포대를 이용해 벌집을 제거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인근 마을로 내려가 우의와 비료포대와 고무장갑을 빌렸다. 아직은 더운 여름이어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우의를 입고, 머리 방어를 위해 비료포대를 뒤집어썼다. 비료포대에 시야용 구멍을 뚫고, 혹시라도 벌이 기어 들어오기 않게 하기 위해 로프로 몸을 칭칭 감았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들고 전진. 몹시 더웠고, 겁이 났다. 눈앞에 수백 수천마리의 말벌이 윙윙대며 비료포대를 갉아댄다. 하지만 일을 위해 하는 것. 송풍구에 들러붙은 벌집을 드디어 떼어 냈다. 그렇게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오면서, 친구와 차안에서 한참을 웃었다.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 일이 있은 후, 2년 쯤 뒤 다시 그 중계소에 벌집이 생겼다. 이번에는 119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제거했다. 그 송풍구는 다시는 벌집이 들어 설수 없도록 개조해 버렸다. 이 일은 우리 두 사람에게 아주 아프지만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참고로 그 친구는 일주일 뒤 다른 중계소에서 혀에 벌을 쏘였다. 아주 작은 벌이 빵에 붙어 있었던 것이었다. 불쌍한 친구다.

  대부분의 기술인들은 같이 일하는 동료와 일을 하면서 즐겁거나 힘든 추억이 있을 것이다. 기술인으로서 아픔과 기쁨도 나누며 일하고, 어려운 일도 헤쳐 나가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우리 기술인들이 사는 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