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서 더욱 즐거운 등산

함께해서 더욱 즐거운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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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룡산 날다람쥐들

<대전 MBC 디지털센터 정경윤>

 나는 가끔 등산을 한다. 등산이 취미인 것은 아니다. 혼자서 산을 오르는 것을 즐기지도 않는다. 굳이 기억을 거슬러 오르고 연관을 지어내자면 어릴 적 아침마다 아버지와 함께 동네 뒷산을 자주 올랐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땐 개인의 의지보다 마냥 관성에 따라 아버지의 뒤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그런 기억 때문일까? 결코 등산이 싫지도 않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언제든 함께 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고나 할까?… 어릴 적 아버지의 뒤를 따랐던 내가 이제는 아버지의 뒤가 아닌 선배의 뒤를 따라 산을 오르고 있다.

 나는 입사 후 줄곧 TV부조정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엔지니어의 생리상 교대근무를 하다 보니 쉽사리 취미생활을 하기도 쉽지 않고, 서로간의 화합을 도모하기도 쉽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찰나. 어느 날 한 선배가 팀 단합을 도모할 겸 등산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어느덧 수년 째 팀원들과 등산을 해오고 있다. 우리의 등산은 산악회 모임처럼 주기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때론 분기에 1번, 때론 몇 달 만에 한번 등산을 한다. 그저 시간이 허락되고 마음이 하나 되는 순간 우리의 등산은 시작된다. 그렇다고 해서 함께 등산을 하는 동료 모두가 산을 사랑하고 산행을 즐기는 소위 마니아는 아니다. 그 중 누구는 ‘날다람쥐’라는 호칭을 얻을 만큼 등산 애호가인 반면, 누구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산행을 완주했다라고 표현하시던 분들도 있었다. 산에는 다양한 수목들이 어우러져 있는 것처럼 우리의 구성 또한 이처럼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다. 마니아와 초심자가 어우러져 있고, 20부터 50대까지 세대와 세대가 어우러져 있다.

 우리가 주로 산행을 즐기는 곳은 대전의 명산 계룡산이다. 계룡산은 충청남도 공주시와 계룡시, 논산시 그리고 대전광역시에 걸쳐 있는 높이 845m의 산이다. 충청지역의 대표적인 산이나 높이나 면적에서 최고나 최대는 아니다. 다만 이 산이 풍수지리상으로 한국의 4대 명산으로 손꼽히고 조선시대에는 이 산 기슭에 도읍지를 건설하려 했을 정도로 굉장한 기운이 흐르는 산이라고 한다. 대전 지역 내에 있어서 가깝기도 하지만, 맑은 정기와 기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산을 자주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코스는 그때그때 조금의 변화는 있지만 주로 4시간에서 5시간 정도의 코스를 선택해서 아침 일찍 등산을 시작한다. 산을 잘 타는 사람에게는 ‘식은 죽 먹기’의 거리일 수도 있지만 처음엔 이것조차 힘든 사람도 있었다. 체력이 떨어져서 산행을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하산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리에 쥐가 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랬던 그들이 지금은 정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원한 막걸리 맛을 누구보다도 즐기고 좋아하는 준 애호가 수준이 되었다.

 이런 저런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중 한 이야기다. 등산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등산을 하면서 에너지가 필요할 때 먹기 위해 준비한 오이며 물이며 간식 등을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의 가방에 모두 모았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일행들 간에 간격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후미그룹의 시야에서 선두그룹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체력적으로도 힘든데다 배도 든든히 채우지 못한 채 등산을 하고 있는 후미 그룹에게 체력을 보충할 양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후미 그룹의 한 사람이 선두그룹에게 전화를 했다.
 
  후미그룹: 어디세요?
  선두그룹: 너 바로 앞이야. 너 보이네. 힘내서 빨리 와 (실제론 보이지 않음)
  후미그룹: 배도 고프고 힘들어서 뭔가 먹고 싶은데 먹을 게 없네요. 잠깐만 쉬었다 가요.
  선두그룹: 그래 저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와~

 이렇게 통화를 하고 나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선두 그룹은 계속 걸었다. 정상까지 1~2시간 정도만 가면 되기에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후미그룹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바로 앞 어딘가에서 기다릴  선두그룹을 계속 쫒았다. 먹을 것이 앞에 있다는 생각으로 걷고 걷고 또 걸어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선두그룹의 계략(?)에 속아서 정상까지 도착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후미그룹은 중간에서 배부르게 간식을 먹고서 주저앉아서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론 후미그룹 사람들도 무조건 간식을 본인들 가방에 챙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런 에피소드가 아니더라도 팀원들과 함께 등산을 하는 것이 내게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회사의 업무에서 벗어나 맑은 공기와 시원한 수목을 벗 삼아 함께 땀을 흘리며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또한 오랜 시간 같이 걷다보면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연스레 말문이 트이게 된다.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업무이야기 나아가 정치, 사회 이슈까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 우리 팀원들에게 등산은 소통의 창구이자 화합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등산 덕분에 우리는 한주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건강한 에너지를 얻어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

 지난 가을엔 낙엽을 밟으며 울긋불긋 단풍진 가을 산을 올랐고, 겨울엔 눈 밟고 엉덩방아 찧어가며 운치와 웃음 가득한 겨울 산을 올랐다. 계절이 변하고 산도 변하고 사람들도 그사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언제나 팀원들과 함께 하는 산행은 즐겁다는 것이다. 웃음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건강까지 책임져주는 일석삼조의 등산 올 봄엔 주변의 동료들과 함께 막걸리 한 사발 챙겨서 가까운 산에 올라 상춘객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