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다. 올해로 직장 3년 차, 결혼 2년 차.. 그러니까 외조가 시작된 지 2년 차가 되는 것 같다.
……
2007년 4월 1일.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거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누나에게 말을 건넸다. 누나는 싫지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 누가 만우절인줄 모를 줄 알고?”
그 해 10월 우리는 결혼을 했고, 그 다음해인 2008년 우리는 딸을 얻었다.
손녀 소식을 듣고 병원에 부리나케 달려오신 어머니 모습에 우리는 당황했지만, 나는 조용히 손으로 산모 나이가 적힌 택(tag)을 서둘러 가렸다.
그렇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지금의 아내 나이를 속인 것이다.
사회적 통념을 깨지 못하고 아들보다 나이 많은 며느리는 보지 않겠다던 어머니에게 사실 나는 아내의 나이를 속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 우리는 동갑 이였다.
다행히 아내가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그 유명한 ‘동안’을 소유한 사람 이였다.
난 평소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허나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랑에는 이성보다 콩깍지가 앞서는 것 같다.
내 아내, 지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절대 동안 아니다.ㅋ
“아이고~ 수고 많았다..”
“네..어머니..”
그 짧은 대화를 나누고 아내는 순산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3일간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음… 역시 아기는 젊어서 나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석훈아, 이상하다. 병원에서 왜 며느리 나이를 잘못 적었을까? 이상하다”
‘옳거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난 아주 해맑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외쳤다.
“엄~마~~ 어쩌 것는가~~ 이제 이쁜 딸까지 낳아 버렸는디~~~ 우리 새끼 겁나 이쁘네 빨리 보러 오소~~”
어땠을까?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어머니는 바리바리 음식을 준비해서 병원으로 오셨다.
우리는 요즘 연상연하 커플의 인식변화에 미디어(드라마)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난 더욱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하늘 같은 마누라를 잘 모셔야 한다. 아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열심히 기사 노릇을 해주고 있다.
답답하다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다면 새벽1시 일지라도 무등산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무등산은 송신소가 있는 곳이다. 매일 출근하는 일터에서 퇴근 후 다시 출근길을 가고 있는 그런 악몽을 꾸어본 적이 있는가?
나에겐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문사마(이문세) 콘서트를 보고 싶다 하면 임신 8개월이든, 9개월이든 상관 않고 마눌 님을 모시고 광주, 전주, 목포를 따라 다녀야 했다.
새벽에도 과일이 먹고 싶다면, 나는 호프집에 가서 과일안주를 포장해 온다.
심지어 한 시간 전에 싸우고도 아내가 “여봉~ 우리 수산물 시장 갈까?” 하면 난 묵묵히 어느새 짐을 챙기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하지만 때로는 지칠 때도 있었다.
특히, 음식에서 만큼은 냉정해지고 싶었다. 아내는 싱거운 음식을 선호하는데 나는 짠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느 날은 아내가 아주 맛있게 떡국을 끓여주겠다며 호언장담을 하고 나에게 온갖 기대를 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배고픔을 참아 가며 한참 후에 도착한 떡국은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였다. 난 떡국에 소고기 대신 새우를 넣고 끓인 아내가 못마땅하여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화가 난 아내는 먹지 말라며 내 밥그릇을 빼앗는 것이 아닌가?
나 자존심 버리고, 아내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 먹게 해 주이소~”
약육강식 이라 했던가?? 씁쓸해진다.
아내 역시 직장인으로서 회사 생리를 알고 있는 터라 술 자리 만큼은 막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12시쯤 되면 여지없이 아내에게서 문자가 도착한다.
짧은 외마디 “ 야~ ”
난 무시한다. 30초 후 또 다시 도착한 문자에는 박명수가 호통을 친다.
“야~ 야~ 야~”
에고고~ 마누라께서 이제 슬슬 마무리하고 들어 오랜다.
지갑을 보니 대리비가 없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가지고 집 앞까지 나오라고 정중히 부탁을 했다.
우리 김여사 술자리 정리하고 나오니 이젠 집에 들어올 필요 없다고 한다. 조마조마하며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저 멀리 마사지크림 덕에 이마에 광채가 나는 한 명의 여인이 보인다.
바로 사랑스런 내 아내다.
만원짜리 한 장을 쓰윽~ 내밀며 “아저씨~ 바래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이런 사랑스런 아내에게 왜 외조를 마다하겠는가?
이제 2년 차인 풋내기가 부부생활을 논한다는 것은 참으로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앞으로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결혼 생활에 대해 논할 기회가 생긴다면 바로 이곳에서 다시 한번 여러분과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부디 아내가 ‘내조의 여왕’이 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설마 내 자신이 ‘외조의 마왕’쯤 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