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화 칼럼>미국 진보 vs 유럽 보수

<이종화 칼럼>미국 진보 vs 유럽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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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진보 보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통신망에서의 망중립성 정책을 둘러싸고 이런 표현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 9월말 미국 FCC는 그간의 오랜 망중립성 논쟁을 마무리 짓고자 ‘규칙제정 공고(NPRM : a Notice of Proposed RuleMaking)’를 통해 망중립성 원칙을 공식적으로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ISP 사업자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을 선별적으로 막거나 속도를 저하시키는 행위를 금지시키겠다는 것이다. 소비자단체가 ‘승리를 향한 움직임’이라며 환호한다고 외신이 전하는 것을 보니 분명 진보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미국 FCC와는 달리 영국의 Ofcom은 지난 8월 말, 창조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콘텐츠 산업의 피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면서, ISP가 P2P 불법 다운로드 유저의 접속 속도를 늦추거나 일시적으로 계정을 정지할 수 있는 법안을 제출했는가 하면, 국무장관이 직접 Ofcom을 진두지휘하고 나서는 등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사업자를 위한 보수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일정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내년 봄에 최종안이 발표될 것이고, 영국 정부는 2012년 이후에 시행을 예상하고 있다하니 시간차가 있겠지만 찬반양론은 정점으로 치달을 것으로 생각된다.

FCC의 이러한 발표는 2005년 8월부터 지지해온 브로드밴드 정책의 원칙을 공식화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터넷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오바마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 기회 진작을 위한 플랫폼으로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방’에 방점을 찍은 듯하다. 그런데 미 국회의 ‘FCC 위원회’의 민주당 측 두 의원은 찬성, 공화당 두 의원은 보류 입장을 밝히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FCC가 밝힌 NPRM 원칙에는 기존의 네 개 원칙에 새로운 두 개 원칙이 추가 되었다. 기존의 네 개 원칙이라 함은, 합법적인 인터넷 콘텐츠에 접근할 권리,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 네트워크에 피해 주지 않는 합법적인 디바이스(단말)로 접속할 권리, 제공업체들 간 경쟁 속에서도 소비자들의 보장받을 권리 등 네 가지 권리를 침해하면 안된다 원칙을 말한다. 거기에 더해, ISP들의 합리적인 망관리는 허용하되 차별은 금지토록 하며, 망관리를 하더라도 그 운영방침을 투명하게 할 것을 보장하라는 두 가지 규정을 새롭게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작년 8월 Comcast의 P2P 트래픽 차단에 대해 FCC가 금지명령을 내림으로써 미국에서의 망중립성 논쟁이 뜨거워졌으며, 인터넷업계와 통신사업자 간 찬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인터넷업계는 ISP가 특정 콘텐츠를 차별해 차단하거나 속도를 낮추는 행위를 제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소비자단체가 동조하고 있는데 반해, AT&T·Verizon·Comcast 등의 통신사업자들은 신규 서비스 출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물론, 망관리·대역폭 낭비·망공격에 대한 방어 노력이 위축되면서 인터넷사업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임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FCC가 이번 6개 원칙을 무선망에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AT&T는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통시장 자체가 매우 경쟁적인데다 무선 트패픽이 급증하고 있어서 투자 측면에서도 망관리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FCC가 주파수경매 후에 규정을 바꾸는 것은 경매 절차의 신뢰 문제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반해 경쟁사인 Verizon과 Sprint는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FCC와의 직접적인 충돌은 자제하고 있는 듯하다.

만약 FCC의 망중립성 규정이 무선망까지 확대 적용된다면 소비자 단체와 Google, Skype 등 인터넷업체들은 큰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이통사업자들은 Mobile VoIP 사업자에게 네트워크를 개방해야 하고, 최대수익원인 음성 및 문자메시지 서비스에서 Skype나 Google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하는 등 지금까지 누려온 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를 내놓아야할 입장이다. 물론 그간 닦아온 시장 노하우를 활용해 요금제 변경 등의 새로운 방법으로 위기국면을 피해나갈 수 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시장질서의 변화 속에 소비자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특히 AT&T는 주파수경매에 있어서 개방조건을 붙이지 않음을 전제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이번 망중립성 규정이 무선인터넷에까지 확대된다는데 대해 심한 반발은 물론 법적 대응도 할 가능성이 예상된다.

 

이상과 같이 유선통신사업자는 물론 이통사업자에 이르기까지 통신업계의 폭넓은 반대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으며, 소비자단체와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들의 찬성 움직임도 그만큼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당이 된 미국 민주당의 진보적 경향에 따르면 FCC의 의향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친기업적인 미국의 성향이 향후 여론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영국의 사례는 물론 그간 발표된 유럽 각국의 정책을 종합적으로 살펴 볼 때 미국의 인터넷 산업화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이 보수적 성향의 법안을 시행했고 프랑스도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지만 재추진하고 있는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두 권역이 상반된 정책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등 다른 나라들에 끼치는 영향도 전망하기 쉽지 않게 되었다.

 

이제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IPTV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저작권 보호 관점과 트래픽 급증을 해소할 망투자와 관련해 망중립성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지 그 정책방향이 결정되어야 하는데, 내년 봄까지 미국에서 벌어질 갈등이 어떻게 정리되는지에 일정수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이통사업자의 5년간 누적 수익이 10조를 넘는다는 등 수익구조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가운데 요금인하와 함께 망중립성 요구도 그만큼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선네트워크에서의 망중립성이 실현된다면 개방에 따른 무선 트래픽은 더욱 급증할 것이며, 이는 역으로 대용량 콘텐츠인 동영상 무선서비스의 투자비용이 그만큼 높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에 Mobile IPTV의 서비스 진입을 둘러싸고 이통사와 인터넷 또는 콘텐츠 사업자간의 갈등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선IPTV에서의 케이블TV와의 갈등 국면이 Mobile IPTV에서는 지상파DMB 사업자와의 갈등, 나아가 모바일포털을 꿈꾸는 인터넷사업자와의 갈등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만약 성장동력을 찾고자 한다면 미디어 시장 전반에 대한 수준높은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이종화, KBS 방송기술연구소,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