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전숙희 기자] 최근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간 불공정 거래로 방송 제작 생태계의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하는 가운데 이를 위해서는 제작 시스템 자체를 세계적 기준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방송학회는 8월 17일 오후 2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송 생태계 독립 제작 환경 진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선영 이화여대 교수는 현재의 문제를 △편법적 계약서 등 불공정한 계약 및 거래 관행 △창작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수익 배분 △비현실적 제작비 및 제작비 지급 문제 △과도한 근로 시간과 열악한 근로 환경 등으로 진단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발제자는 물론 토론자들도 동의했으며, 그 근본적 원인은 방송 제작 시장 전반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외주 제작사가 상대적으로 협상력·경쟁력이 약소하기 때문이라는 점에도 의견을 수렴했다.
신종철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기반국 편성평가정책과장은 “방통위에서 관련 업무를 맡고 느낀 인상은 다른 산업에 비해서 많이 열악하다는 것”이라며 “산업의 파이 크기에 비해 너무나 많은 플레이어가 있고, 재원이 적은 것에 비해 열악해지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고 방송 제작 환경을 평가했다.
이에 최우영 보다미디어그룹 제작본부장은 발제를 통해 제작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촉구했다. 최 본부장은 “유럽의 채널은 어떻게 항상 웰메이드 다큐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해외 시장을 경험해 보고) 해결할 수 있었다”며 “어느 방송사도 혼자서 웰메이드 다큐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최 본부장이 제안하는 제작 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 보통 이뤄지는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 양자 간 계약에 의한 콘텐츠 제작이 아닌, 다수의 방송사와 제작사가 투자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다자간 계약을 통한 제작 시스템이다.
해외에서는 라운드 테이블 피칭 등을 통해 제작자가 콘텐츠에 대한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그 콘텐츠의 가치를 인정하는 방송사, 플랫폼사, 제작사 등이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많은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콘텐츠를 기획한 제작자와 창작자의 권리도 존중되고 자연스럽게 보호받는다. 또, 플레이어의 수만큼 투자액도 증가해 산업의 규모를 증대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그 결과인 고품질 콘텐츠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장기적으로 산업 전체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 본부장은 창의적 자유를 정의하는 주제 선정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제작 방법의 자유,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중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해외와 비교해 수십 배 차이 나는 우리의 제작비를 지적했다. 지난 7월 15일(현지 시각 14일) 다큐멘터리 제작 중 사망한 故 박환성·김광일 PD의 사고 역시, 비현실적 제작비를 가지고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려다 보니 본인의 안전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결과라는 것이다.
박봉남 독립 PD 또한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젊은 제작자의 유입이 어렵다는 점을 꼬집었다. 우리 제작자들이 해외에서 우수한 결과물을 얻으며 글로벌 스탠다드를 경험하고 있는데, 이런 경험을 무시한 채 국내의 불공정한 관행을 따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 PD는 “젊고 새로운 제작자가 계속 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글로벌 스탠다드에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