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화 칼럼> 인디언의 영혼, 그리고 IT 서비스

<이종화 칼럼> 인디언의 영혼, 그리고 IT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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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가 되면 이따금 등장하는 인디언들의 이야기가 있다. 인디언들은 멀리 사냥 나갔다가 자신의 마을 방향에 불이 난 것처럼 보인다든지 또는 무슨 큰 일이 있음을 알게 되면, 즉시 말을 내달려 쏜살같이 되돌아 가다가도 중간에 갑자기 멈춰 선다는 것이다. 지친 말에게 쉴 시간을 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자신의 영혼이 미처 뒤따라오지 못했을까 염려되어 영혼이 다다를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영혼이 도착했는지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착했겠다 싶으면 다시 말을 달려 목적지로 향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디언의 관습을 통해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너무 혼을 빼앗기지 말고 쉬엄쉬엄 정리해가면서 뭔가 잘못된 것은 없는지 짚어보고 가야한다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예화는 급속히 발전한 IT 세상과 IT 서비스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가르침을 준다.

 

IT가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것은 그 중심 학문인 전자공학의 발전 속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전자공학에서 다루는 재료나 시스템의 반응속도가 다른 학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빠르기 때문이리라. 이를테면 토목이나 건축공학은 시설이나 건물 완공 후 긴 시간이 지나야 문제를 파악할 수 있지만, 전자공학은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이 나타나기 때문에 문제 해결까지의 한 사이클이 매우 짧아 발전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빠르게 달려가는 IT 세상에서 우리들의 영혼이 혹시 제대로 뒤따라오지 못하는지, 우리들의 삶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인간적이고 탈문화적이며 비윤리적인 궤도에 빠져 쳇바퀴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어떻게 서비스하고 또 사용하는가의 문제겠지만, 광대역의 유선통신 인프라를 통한 무한적인 영상서비스는 사람들의 넋을 서서히 빼앗아 갈 수도 있으며, 언제 어디서고 접속가능하게 만드는 무선통신 인프라 역시 그런 쳇바퀴에서 인간을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좋게 이야기하자면, 이와 같이 발전된 인프라가 제공하는 통신서비스의 세계는 그간 ‘콘텐츠’라는 것과 무관하게 발전하면서 그런 문제들로부터 떨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그런 문제에 무심하거나 도외시해도 통신사업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통신인프라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필요에 의해 서로 콘텐츠를 교환하기 때문에 콘텐츠는 오롯이 사용자의 몫으로 치부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유무선 통신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게 되는 방송은 그런 문제들로부터 뗄 수 없는 서비스이며, 따라서 방통융합이 만들어가는 이 시대에 인디언의 관습은 분명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통신의 힘으로 방송에 진입하려는 사업자에게는 더더욱 큰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테면 급하게 말을 달려가는 인디언은 유무선 통신 ‘인프라’ 쯤에 해당하고, 그가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그의 영혼은 ‘콘텐츠’라 할 수 있다. 그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따라서 어느 하나만을 중히 여기면, 마치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제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인프라가 되며 버려진 콘텐츠가 될 수 밖에 없다.

인프라가 개발되고 구축되었다고 해서 그 사업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은 최근 몇 가지 새로운 IT서비스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Wibro가 그렇고 DMB가 그러하며 IPTV 또한 예외가 아닐 수 있다. 기술적 가치에 너무 취한 나머지, 그 기술에 담을 그 무엇에 대해 법적으로 문화적으로 제대로 된 길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환경을 조성하지도 못한다면, 또한 사업자들 스스로 투자에 합당한 이윤을 보장받을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 기술의 이름값에 상처를 주는 일이 되는 것이다.

IPTV는 통신사업자가 탄생시킨 서비스인 만큼, 출발부터 인프라 구축이 서비스를 견인한다는 관점에서 추진되어왔다. 그런 과정에서 통신사업자들은 콘텐츠의 중요성을 인지하여 한편으로는 협상하고 한편으로는 콘텐츠 업체를 인수 합병하는 노력도 해왔지만, 아직까지도 지상파방송 사업자와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고 콘텐츠 기업을 되파는 전략 수정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안장에 앉아 머뭇거리다가 영혼이야 따라오든 말든 채찍으로 갈 길을 재촉하는 인디언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서둘러 무리하게 길만 재촉한다면 한참 후 그는 넋이 빠진 채 멍히 하늘만 바라보는 인디언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또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DMB도 예외는 아니다. 전혀 다른 몸에 지상파TV의 DNA를 그대로 복제해 놓고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며, 더욱이 무료 보편적 서비스의 덫과 단방향 올무에 얽어 놓은 채 날렵하고 민첩한 서비스를 희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프라와 콘텐츠는 한 몸인 것이다.

 

 

 

(이종화, KBS 방송기술연구소,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