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요일 오전
일요일 새벽 알람7시 알람이 나를 깨운다. 이미 햇볕도 거실가득 나를 깨우고 있지만 굳이 새벽이라고 하는 것은 전날 생방송[쇼! 음악중심]의 조명감독으로서 지칠 때로 지친 내 몸은 아직 새벽이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에 조명큐시트작성과 시뮬레이션으로 약 2시간정도 밖에 자지 못하고 바로 생방송에 임하는 터라 쉴 새 없이 토요일 낮은 지나간다. 귀가 후 그냥 침대로 가기에는 아까운 주말. 와이프와 집근처 지인들과 술 한 잔하고 나면 어느새 밤12시가 훌쩍 넘어가버린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 뒤척이기는커녕 와이프나 아이들을 깨울까 재빨리 알람을 꺼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날씨 좋은 아침 와이프의 잔소리가 시작되기 때문이고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치 도둑질을 하는 것처럼 비몽사몽으로 전날밤 준비한 작은백 하나를 들고 차에 오르고 곧 집근처 초등학교로 들어간다. 상쾌한 공기와 함께 찌릿찌릿 엔돌핀이 나의 전원스위치를 켠다. 정신이 평온해진다. 몇몇 사람들이 미리 나와 있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곳은 내가 일주일동안 학수고대했던 장소 [서울상월초등학교] 운동장이며 내가 몸담은[서라벌FC]조기축구가 행해지는 곳이다.
3년전 이곳을 이사오기 전에는 농구에 미쳐있었다. 회사에 입사하면서 가입한[MBC농구동호회]의 일요일 오전 정기모임에다 [YMCA배 직장인 농구대회]와 3ON3 길거리대회를 비롯해 인터넷카페에서 만난 팀과의 친선 시합등 ON OFF에서 많은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나고 양육 때문에 노원구에 이사한 후 농구를 소홀히 하게 되면서 일요일 오전에 눈을 뜨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시들어가는 나의 팔다리가 나에게 이용해달고 요구하는 듯 했고 1분 75회로 평균 박동을 하고 있는 심장은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열정이 없는 세포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부서인사이동과 함께 나는 자전거를 사서 여의도까지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기 시작했다. 출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고 지하철로 이용한 시간보다 불과 10분밖에 더 필요하지 않으며 운동을 위해 따로 시간을 소비하지 않아도 돼 와이프와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척 매력적이었다. 집과 회사와의 거리가 33km라서 충분히 운동효과가 있고 자전거도로가 잘 포장 되어 있어 지나쳐가는 가는 신호등이 하나밖에 없어 타는 도중 스트레스가 없었다. 세포들이 다시 태어나고 있는 듯 했지만 일요일 오전의 공허함과 한가로운 심장을 위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일요일 오전 큰아기 유모차를 이끌고 동네 한바퀴를 돌때 [서라벌FC]를 만났고 이젠 축구가 나의 일요일 오전을 자리매김 해오고 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매일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와이프에게 술을 마시지 않기로 약속하고 [가장의 건강이 가정의 건강이다.]라고 주장한 끝에 설득을 얻어내어 시작한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물론 나는 약속을 깨고 요구르트100개에 맞먹는 유산균이 들어있고 식이섬유가 풍부하다는 막걸리의 애호가가 되어가고 있으며 그로인해 아직 뱃살은 버티고 있다.
7시30분이 되어서야 상대팀과의 게임이 시작된다. 30분씩 한게임으로 12시30분까지 약 8게임정도 이루어지는데 나는 약 4-5게임을 하곤 한다. 처음엔 스위퍼(최종수비수)에서 적응하다가 지금은 중앙 미들필더에 자리잡고 있다. 내 축구를 비교하자면 맨체스터의 박지성같이 열심히 뛰지만 축구의 생명인 킥이 약한 것이 흠이다. 아직도 진화중이며 공격위치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구기 단체종목을 좋아하는 이유는 한 팀이 승리의 목표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목적 달성하는데 있다. 경기 중에는 공을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던 끊임없이 주위동료들의 위치, 움직임과 마음을 파악하고 있어야 공간 패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회사일도 마찬가지라고 보며 항상 주위동료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독드리블시간이 길어지면 상대수비수들로 인해 에워싸여 결국엔 공을 뺏기고 만다. 그러면 조직전체의 승리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고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내 최고의 게임은 3골중 첫 번째 골과 두 번째 골 어시스트, 3번째 골 2차 어시스트를 기록한 한달 전 경기였다. 이제는 골보단 완벽한 어시스트가 더 달콤하다.
한게임을 마치고 그늘벤치에 돌아오면 막걸리와 준비해온 음식들이 가득하다. 회원 구성원들의 나이와 직업이 다양하다보니 재미있는 일을 많이 느낀다. 회원들 중 반찬가게를 운영하시는 형님은 계절에 맞게 겨울에는 감자탕, 매운탕, 북어 콩나물국등을 여름에는 두부김치, 콩국수, 닭도리탕등을 준비해와 회원들의 혀를 즐겁게 해주신다. 먹는 것으로는 전국 최고 클럽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또한 순대공장 본부장인 형님은 각종 고급 순대를 준비해 오신다. 예전 제작기술국 워크샵때 순대를 가져가서 큰 호응을 받은 바 있으며 순대 매니아로서 우리 냉동실에는 포장된 순대가 대기하고 있다. 또한, 기아자동차 대리점 점장인 형님이 계셔서 기아차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간호사아내를 둔 동료 때문에 회원전체가 1년에 한번 혈액검사를 받고 있다. 화장실바닥 하수구가 막혀 고생했지만 한 형님 덕분에 시원하게 뚫린 적도 있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것을 얻어가고 있는 [서라벌FC]가 사랑스럽다.
벌써 12시가 넘어서고 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한 결과 예상대로 와이프한테 메시지와 부재중 통화가 여러 번 와있다. 항상 들어있는 [빨리 와]라는 문자와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 가자고 메시지가 왔다. 형님들이 점심먹자는 유혹을 뿌리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땀으로 뒤덮여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부리나케 집으로 향한다.
MBC 영상 기술부 나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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