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편집위원 송주호
지난 20세기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다양성’을 첫 손으로 꼽고 싶다. ‘우리’보다는 ‘너와 다른 나’가 의식의 초점이 되고 있는 개성의 시대가 바로 20세기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예술에서 보다 표면적으로 나타났다. 음악도 이러한 시대상을 피해가지 않았다.
20세기 초에는 과거의 음악적 가치를 유지하는 보수적인 악파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기존의 멜로디와 리듬, 화음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새로운 표현방법을 찾는 미래적인 악파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미래적인 악파는 무조음악의 창시자라고 일컫는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로 시작된다. 그는 후에 12음 기법이라고 하는, 으뜸음의 절대 권력을 무력화시킨 민주적인 작곡 시법을 창안하였으며, 그의 중요한 제자인 안톤 베베른(Anton Webern, 1883-1945)과 알반 베르크(Alban Berg, 1885-1935) 등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같은 작곡 이론을 사용했음에도 그 결과는 크게 달랐다. 베베른은 각 음의 음색을 다르게 부여하는 음색 작곡기법을 사용하여 미래적 악파를 이어가는 연결고리가 된 반면, 베르크는 음렬을 이용하되 음정을 화성적으로 배치하여 유사 조성을 만듦으로써 옛 음악과 타협하고 대중에게 어필하는 작곡가들의 모범이 되었다.
베베른을 이어받은 작곡가들은 음렬을 음정뿐만 아니라 음 길이와 피아노에서 포르테까지의 다양한 다이나믹을 숫자열의 조합으로 선택하여 배치하는 전음렬 음악을 발전시켰다.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b.1925)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2007) 등에 의해 극치를 이룬 이 방법은, 1960년대에 들면서 작품이 어떤 소리가 날 지 작곡가조차 알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들리는 소리’에 초점을 맞춘 음향 음악으로 급속히 대체되었다.
윤이상(1917-1995)과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 1923-2006),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b.1933) 등으로 대표되는 음향 음악은 들리는 소리에 주안점을 주기 때문에 작곡가마다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윤이상은 동양적인 자유로운 선적 흐름을 강조한 반면, 리게티는 앙상블을 구성하는 악기들이 리듬과 음정들을 달리하면서 음덩어리의 운동을 표현하였으며, 펜데레츠키는 새로운 악기 연주 방식법을 통해 다양한 음향을 창조하고 또한 특정 범위에 속한 모든 음정을 동시에 연주함으로써 소음의 다양한 활용을 선보였다.
또한 음향음악은 20세기 초부터 실험되어온 전자음악에 큰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전자음악은 다양한 음향을 창조할 수 있었으며 장비만 있다면 장대하고 복잡한 작품이라도 연주자를 섭외하는 부담 없이 혼자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많은 젊은 작곡가들이 전자음악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들리는 소리 자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형식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옛 고전 형식을 불러오는 타협을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20세기 후반에 신고전주의라는 영향력 있는 유파로 크게 신장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젊은 작곡가들은 이러한 선배들의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헬무트 라헨만(Helmut Lachenmann, b.1935)과 베아트 푸러(Beat Furrer, b.1954) 등은 계속해서 기존 악기의 연주법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었으며, 루이지 노노(Luigi Nono, 1924-1990)와 피에르 앙리(Pierre Henry, b.1927) 등은 녹음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전자음악이 아니라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라이브 전자음악으로 영역의 한계를 극복해나갔다.
사실 ‘타협’이라는 비교적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러한 노선은 음악은 사람들이 즐기기 위한 것, 혹은 인류가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라고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작품의 역사성보다는 현 시대의 청중을 중요시하는 그들은 20세기 전반의 실험으로 피로감을 발판으로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주류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 내에서도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나누어져 있다. 한스 첸더(Hans Zender, b.1936)와 볼프강 림(Wolfgang Rihm, b.1952) 등과 같이 전위적인 음향을 수용하는 측과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ean, 1908-1992)과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b.1926) 등과 같이 고전적인 연주법을 토대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측이 있었다. 또한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b.1935)와 같은 소련의 압제에서 해방된 동구권의 작곡가들이 민속 음악과 동방 정교회의 전통에 바탕을 둔 음악을 선보이면서 이 부류에 합류했다.
이렇게 태어나고 저렇게 태어나고, 그리고 이렇게 갈라지고 저렇게 갈라지면서 발전한 20세기 음악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어떠한 유파나 흐름을 판가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혼란의 시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 강 저 강에서 흘러온 강물이 모인 바다와 같다고 하는 것이 옳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는 21세기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키워드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21세기의 대한민국 사회는 다양화 시대에 획일화를 꿈꾸고 있다. 연어와 같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멋모르던 시절의,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았던 시절이 그리워 열심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조언이나 손가락질 하며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 감고 귀를 막으며 똥고집 하나로 밀어붙이고 있다. 영화 ‘박하사탕’의 유명한 대사가 생각난다.
“나 돌아갈래!”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던 이 말은 이제 앞으로 나아갈 줄 모르는, 성장이 멈추어버린 ‘그들’에 대한 비웃음 섞인 상징이 되어버렸다. 이 말이 다시 우리의 동감을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아침이슬’이 다시 우리 품에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보다는 짧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