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한나라당이 신문법과 방송법 등 언론악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7월 22일 한나라당은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 주변을 에워싼 채, 김형오 국회의장의 연출과 이윤성 국회부의장 및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주․조연으로 불과 30여 분만에 이 모든 법안을 전광석화처럼 통과시켰다. 언론노조의 파업도,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대도, 전문가를 포함한 일반시민 다수의 반대도 그들에겐 공연불이었다. 이쯤되면, 조중동과 재벌에게 방송을 주겠다는 광적인 신념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법안을 강행 통과시킬 때도 강승규 의원이 대표발의 했다는 방송법과 신문법 등은 그 법안이 무엇인지 공개되지도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그 내용을 알지 못한 채 표결에 참여했다고 한다. 게다가 방송법은 1차 부결이 되었음에도 재 표결시켜 억지로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대리투표 의혹까지 등장하고 있다. 날치기 통과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쌩날치기’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어떨까. 한나라당은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논의와 야당의 주장 및 여론을 고려해 최종안을 냈다고 주장한다. 상당부분을 양보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규제완화가 약하다고도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먼저, 지상파 방송의 경우를 살펴보자. 한나라당의 최종안은 지상파 방송에 대한 대기업과 신문의 지분소유를 10%까지 허용하고 2012년 말까지 경영을 유보한다고 해 놓았다. 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제시했던 2012년 12월 말까지 신문과 대기업의 소유 금지가 아니라, 10%까지 소유를 허용하고 경영을 유보한다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애초 나경원 의원이 대표발의 한 한나라당 개정안은 대기업과 신문의 지상파 방송 소유를 20%까지 허용한다고 해 놓고 있다. 이와 비교해 단지 10%포인트 소유 비중만 감소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분의 10%만 소유하고 경영권을 제한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 어떤 견제장치도 없고, 내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질적 경영권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망막하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지역 지상파방송에 대해 신문과 대기업이 10% 소유를 허용하며, 이에 근거해 경영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결국 10%만 소유해도 사실상 지배하고 경영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지상파 방송에 대한 대기업과 신문의 소유 지분률을 애초 개정안에서 10% 하향조정한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10%건 20%건 상관없는 것이다.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소유규제도 그렇다. 한나라당 최종안은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대기업과 신문이 30%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고, 외국자본은 2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애초 나경원 의원이 대표발의 한 개정안에는 대기업과 신문의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소유제한을 공히 49%로, 외국자본 20%로 규정하고 있다. 이후 한나라당에서는 종합편성채널은 30%로 해야 한다는 수정 제안이 등장하면서 굳혀졌다. 다만, 박근혜 대표의 발언이 미디어 정국의 변수로 떠오르면서, 이를 의식해 애초 대기업과 신문이 보도전문채널의 49%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을 30%로 낮추고, 외국자본이 10%까지 소유하도록 한 것이다. 이 역시 한나라당의 애초 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결국 언론법의 핵심인 방송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최종안은 자신들의 내부적인 논의를 통했을 뿐, 야당이나 시민사회, 전문가 의견 등 여론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여기에 한나라당은 최종안에 대한 문제점과 비판을 희석시키기 위해 미디어다양성 위원회를 설치해 매체합산 영향력 지수를 개발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마치 야당이나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여론독과점 우려를 방지하기 위한 결정적인 장치인 양 이야기한다. 신문 구독률로 신문시장 여론을 측정하고, 이렇게 측정된 결과를 신문이 소유하는 방송뉴스채널의 시청점유율에 반영해 여론다양성을 꾀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최종안에는 이를 2012년 말까지 개발하겠단다. 왠 뒷북인가.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세 기업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통신업계를 예로 들며, 지상파방송·종편·보도채널 시장이 ‘3·3·3’ 구도가 돼야 ‘유효경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종편 2개는 연내에 도입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펼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매체 합산 점유율과 미디어다양성 위원회 역시 허장성세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구독률에 대한 공정한 측정 없이, 시장점유율에 대한 판단 없이, 신문시장 등 매체환경에 대한 실태조사 없이 일단 신문의 방송진출을 허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장 실태조사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실태조사를 하더라도 신문 구독률을 시청점유율 혹은 시장점유율로 환산하는 작업은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를 수행하더라도 정밀한 분석과 시장적용에의 시뮬레이션 등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게다가 우리의 신문시장은 발행부수, 판매부수, 매출액 그 어느 하나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점유율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나 데이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개념에 조차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안의 직권상정은 백번 양보해도 부적절한 처사였다. 날치기 통과는 두말할 여지도 없다.
정부와 한나라당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언론악법 날치기 통과 후, 그들이 보인 행보가 이를 증명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8월 15일을 맞아 150만 명의 생계형 사면을 발표하는 등 낯설은 ‘서민행보’를 시작한 것도 그렇고, 방통위 최시중 위원장이 이번 날치기 통과에 대한 헌재의 법적 판단이 있기도 전에 종편채널 도입을 운운하며 이미 언론악법이 통과되었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사회적 여론과 시각은 외면한 채 독자적인 행보를 보인 것도 그렇다. 또한 한나라당이 ‘민생’에 주력하겠다고 한 것도 결국 그들만의 언론악법을 사회의제에서 밀어내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광장을 봉쇄하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부, 한나라당은 그들만의 통과선언과 신속한 후속작업으로 여론몰이를 시도하고 더 이상의 사회적 논의의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언론악법의 날치기 통과는 그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정부와 한나라당 내의 논의만으로 관철되었다. 그들에겐 야당과 시민사회와 국민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있었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있었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언론악법을 그들이 하던 대로 일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사회의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논의인 민주주의를, 해 묶은 논의였던 표현의 자유를, 언론의 자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여름 촛불이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