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통계조작 논란에 대하여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통계조작 논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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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조작, 필자가 지난 1월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문제의 보고서, <방송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2009.1)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통계조작을 의심하지는 않았었다. 국책연구소가 통계조작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우연한 계기로 문제의 보고서를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이 보고서에 치명적인 함정이 있고, 또 그 중 한두 부분에 통계조작 혐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KISDI는 문제의 보고서에서 영국의 OFCOM 자료에 2005년 영국의 방송시장 규모가 ‘124억 파운드’라 쓰여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자가 영국 OFCOM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파일을 열어본 결과 그것은 KISDI의 주장과 달리 ‘117.7억 파운드’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KISDI는 7월 1일 해명보도자료에서 “확인 결과 124억 파운드가 아니라 117.7억 파운드였다”고 스스로 잘못을 시인했다. 또 2005년 영국의 GDP 대비 방송시장 비율도 1.01%가 아니라 0.96%라고 정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117.7억 파운드를 124억 파운드로 바꾸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소명하지 못했다. 단순실수가 아니라 조작이었던 것이다.

KISDI가 영국 OFCOM의 통계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지 이틀 후 필자는 이들의 보고서에서 또 한 차례의 어이없는 통계를 발견했다. 보고서에는 2006년 우리나라 명목GDP가 한국은행이 공표한 수치인 8800억 달러가 아니라 1조 2949억 달러로 표시되어 있었다.

KISDI와 정부는 줄곧 우리나라 GDP 대비 방송시장 비율이 0.68%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유규제완화를 통해 이를 선진국 수준인 0.75%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0.68%라는 수치를 산출한 계산식의 분모인 GDP 통계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이 보고서를 쓴 연구자들 중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 수치의출처가 어디냐고 물으니 ITU라고 한다. 그러나 그와 전화를 끊고 ITU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본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 곳 어디에도 1조 2949억 달러라는 수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2006년 대한민국의 GDP가 8880억 달러라는 수치가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필자의 이런 의혹제기에 대해 KISDI는 해명보도자료를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ITU의 유료DB에는 분명히 1조 2949억 달러로 표시되어 있다며 그것이 정확한 한국의 2006년 GDP라고 주장했다.

변재일 의원과 일부 언론사들이 2006년 우리나라 GDP가 1조 2949억 달러가 아니라 8880억 달러라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한국은행과 UN,IMF,OECD, 세계은행 통계들보다 ITU의 잘못된 통계를 더 신뢰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나 언젠가는 진실은 가려지는 법. 7월 초 변재일 의원이 ITU로부터 그들의 통계가 잘못되었음을 확인받고, 천정배 의원이 ITU 유료데이터의 환율적용이 잘못되었음을 밝혀내자, KISDI는 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006년 GDP통계수치를 정상적인 수치로 복원시킬 경우 우리나라의 GDP 대비 방송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 수준이 될까. 또 복원된 수치들은 보고서의 결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2006년 우리나라 방송시장 규모를 87.41억 달러로 추정한 KISDI의 수치를 존중하고, GDP만 1조 2949억 달러에서 8880억 달러로 복원시킬 경우 우리나라의 GDP 대비 방송시장 규모는 0.98%가 된다.

그리고 GDP 대비 방송시장 규모 0.98%라는 수치는 선진국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방송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현재 우리나라 방송시장이 포화상태에 있는 시장이라면 정부의 방송소유규제완화로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KISDI도 7월 7일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GDP 대비 0.96%에 도달한 영국의 방송시장에 대하여 “포화상태에 이르러 시장이 정체되어 있”다고 지적했다는 점이다. 방송의 해외수출이 우리보다 훨씬 더 용이한 영국의 방송시장 비중 0.96% 상태가 포화상태라면, GDP 대비 0.98%에 도달한 우리나라의 방송시장은 매우 심각한 포화상태라 볼 수 있다.

요컨대 KISDI 보고서에서 잘못된 GDP통계를 정상화시킬 경우, 우리나라 방송시장은 포화상태에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며, 이런 포화상태의 시장에 대하여 정부가 시장규제완화에 나설 경우 생산유발효과나 취업유발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과열경쟁을 불러 일으켜 경제적인 부(負)의 효과, 즉 마이너스(-)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홍 헌 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