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통제한다

[사설] 국민이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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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이 의원총회에서 “미디어법은 국민 앞에 약속한 것이기에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강력히 건의 하겠다”고 한다. 그 배경으로 3월에 3당 교섭단체가 국회의장 중재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100일간 활동 결과를 토대로 표결처리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국회의장도 이번 주 안에 여야간에 타결되지 않으면 의장으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 동안 한나라당과 정부가 내세운 미디어관계법 개정의 근거가 된 정보통신연구원(KISDI)이 지난 1월에 내 놓은 ‘방송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 분석’이란 보고서가 이미 엉터리라고 판명이 났음에도 이에 대한 해명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KISDI가 ITU의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단순 오류 차원이 아닌 의도적으로 통계를 조작했다고 한다. 엉터리 보고서를 근거로 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 개정시도는 근거를 상실했기 때문에 원천 무효가 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보고서에서 말하고 있는 2만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엉터리 경제적 효과를 문화체육관광부는 온갖 광고매체를 동원해 홍보하면서 일자리가 없어 속 태우고 있는 젊은 청년 실업자들에게 방송사와 같은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고 속칭 ‘뻥’을 치면서 또 다시 속이고 있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제대로 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한나라당의 추천을 받은 인사들이 소신껏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지 않고, 모든 행동과 발언을 통제하고 간섭한 한나라당에 있지 않은가? 한나라당 위원들 간에도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토론할 수 없었다는 전언도 있다. 한나라당의 의도되고 조작된 정책과 여론 왜곡 때문에 위원회는 반신불구가 되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 개정에 대한 명분 살리기에 급급한 청부위원회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위원회 활동 시작부터 삐걱되었던 것이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실시한 공청회도 패널 구성, 공청회 준비 등 모든 것이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진행해 참석자들의 거친 항의만 받았을 뿐 아무런 여론도 수렴하지 못한 채 끝났다. 가장 중요한 권역별 여론 수렴이 무산되었고, 공인기관을 통한 대국민 여론 설문조사조차 온갖 핑계를 대면서 무산시킨 한나라당이 3월의 약속을 지키라고 민주당을 몰아세우는 것을 어불성설일 뿐이다.

 통계를 조작하고 국민 혈세를 써가면서까지 논리에도 안 맞고 정서에도 맞지 않은 논리를 홍보하지 말고, 차라리 솔직하게 현재의 방송구도가 싫고 족벌신문에 특혜를 주기 위해 언론관계법을 개정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 아닌가? 지금과 같은 행태는 대한민국과 한나라당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을 방송 탓으로 돌리고 자기 반성없이 남만 탓하는 것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정권도 정당도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정당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최선이다. 언론을 통제하고 여론을 통제해서 정권을 창출하는 것만큼 무능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다. 정부 여당이 이처럼 목을 매고 있는 족벌신문도 언젠가는 그들을 조종하고 통제할 것이다. 족벌신문이 막강한 여론통제권을 가진다면 더 이상 정당의 통제 대상이 안 된다. 정권도 언론도 국민이 통제할 대상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한낱 정당의 인위적인 언론 통제 작태는 그만 두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정부여당이 국회의장을 압박하여 언론관계법을 직권으로 상정하여 처리한다면 커다란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지금과 같이 국민이 소통할 수 있는 매체가 많은 환경에서는 더 이상 국민의 뜻을 통제하지 못한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계속 있을 각종 선거에 성난 민심이 그대로 반영될 것이고, 그 결과는 한나라당에 고스란히 되돌아 갈 것이 뻔하다. 진심과 신심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영원히 살 길이란 것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면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