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 비관론이 고개들고 있는 이때에, 우리나라보다 대략 2년 이상 앞서 IPTV 서비스를 개시한 유럽과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유럽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삼진아웃제’와 미국에서 계속 지펴지고 있는 ‘인터넷 종량제’ 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삼진아웃제는 구미 각국이 디지털콘텐츠 저작권보호를 위해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프랑스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의회가 최종적으로 통과시킨 인터넷 접속 금지 법안을 말하는데, 세 번 이상 불법 다운로드한 사용자를 1년간 인터넷세계로부터 사실상 격리시키는 강력한 법안이라 할 수 있다. EU 회원국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일명 ‘IP레드(RED)법’으로 저작권 강화에 나선 가운데 프랑스 의회가 제일 먼저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고 기본권이 축소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반대표를 던진 사회당에서는 표현 및 정보에 관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하는 등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는 이번 조치로 불법콘텐츠 이용이 80% 가량 대폭 줄어들 것이라며 삼진아웃제가 저작권 침해를 해결하는 법적 수단으로서 유효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여러 나라에서는 프랑스 정부가 시행과정에서 어떻게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한편 불법 콘텐츠 이용이 줄어듦에 따라 트래픽도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지난 4월부터 IPRED법을 시행한 스웨덴에서는 트래픽이 1/3 가량 줄어들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트래픽이 대폭 줄게 될 경우, 통신사업자들은 네트워크 부문의 투자회수를 위해 콘텐츠 합법이용을 높여야 나가야 할 것이며, 다양한 콘텐츠 소비촉진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이상과 같은 흐름에 있어 예외는 아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7월쯤 삼진아웃제를 시행할 예정으로 저작권법 시행령을 준비한다고 한다. 따라서 P2P나 웹하드 사이트에서 불법 배포되는 콘텐츠들에 대한 보호가 강해질 것으로 보여 스웨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트래픽이 급감할 가능성도 전망된다. 이러한 규제 변화는 콘텐츠 사업자나 IPTV 사업자 입장에서 볼 때, 단기적으로 콘텐츠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콘텐츠의 합법적인 소비를 통해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단기적으로 급격한 트래픽 감소는 네트워크 과투자라는 비판과 함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면서 악순환 고리가 시작될 가능성도 우려되며, 그 과정에서 특히 자금력이 약한 중소 동영상업체나 P2P업체는 네트워크 비용부담은 물론 콘텐츠 부족이라는 이중고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삼년 동안 각광 받아왔던 UCC 사이트를 비롯한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이 수익모델 구축에 실패한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삼진아웃제는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격이라 할 수 있다.
통신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IPTV 등 콘텐츠 사업의 수익모델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네트워크 소비가 줄어들면서 통신부문의 수익이 악화될 수 있는 ‘계륵’인 셈이다.
인터넷 종량제도 통신사업자들에게 계륵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작년 중반 미국에서 종량제 불씨를 지폈던 Time Warner Cable(TWC)은 최근 미국 내 4개 도시에서 종량제를 본격 시행하려 했다가 소비자와 정치계의 반발로 일주일 만에 계획을 철회하는 곡절을 겪었는데, 새로운 수익모델 발굴을 위해 종량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도전정신을 갖고 다시 제기할 것임을 밝힐 정도로 강한 미련을 갖고 있다.
당초 TWC는 요금에 따라 월 10GB ~ 60GB 까지 상한선을 정하고 1GB 초과할 때마다 1달러를 더 내도록 하되, 100GB를 기본 제공하는 월 75달러 요금제에서는 초과 부과요금을 75달러로 제한하여 무제한 사용할 수 있도록, 즉 월 150달러에 무제한 사용하는 상품을 내놓는 등, 요금에 따라 사용량에 차별을 두는 형태의 종량제를 시행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거부 움직임에다가 한 상원의원이 ‘인터넷은 물이나 전기처럼 필수적인 서비스’라며 반대하는 등, TWC 혼자 거부 여론을 헤쳐 나가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TWC는 결국 종량제가 소비자 요구와 부합한다는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추진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으나, 생존 전략 차원에서 종량제가 최종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기정사실화 작업을 병행하는 등, 일반의 거부감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업자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주어야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또 어떤 사업자가 그 다음 차례를 맡아 종량제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AT&T가 무선 트래픽 유형에 따라 서비스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놓았는데 이는 무선 부문에서의 종량제 강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AT&T는 넷북 판매촉진을 위해 무선데이터 서비스 약관을 손보면서, 이를테면 슬링박스 이용이나 P2P 사이트에서의 영화 다운로드 등 트래픽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단말 사용을 금지키로 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슬링박스를 이용한 원격 콘텐츠 서비스가 개인이 계약한 대역폭 내에서의 원격시청이기 때문에 적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지만, 대량 트래픽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이용에 대해 통신사업자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제재하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슬링박스를 이용하면 개인용 유무선 IPTV와 유사한 형태의 채널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AT&T로서는 자사의 IPTV 서비스를 침해하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무선을 가질 것 없이 Telco들은 각자의 사업의도를 갖고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면서 지속적으로 종량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삼진아웃제’와 ‘인터넷 종량제’는 논란을 거듭하는 가운데 Telco들의 수익 모델 찾기의 일환으로 그들의 ‘비비디바비디두’라는 주문(呪文) 속에서 ‘생각대로’ 될 가능성을 높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종화, KBS 방송기술연구소,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