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는 바이올린 소리이고, 디지털은 피아노 소리라고 푼다

아날로그는 바이올린 소리이고, 디지털은 피아노 소리라고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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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는 바이올린 소리이고, 디지털은 피아노 소리라고 푼다

 



편집위원/SBS기술팀 부장 성규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 오던 진공관 한 쌍이 있었다. 무척 크고 멋진 진공관이었기에 그저 상상만으로 소리를 느끼면서 소중히 간직한지 20년이 넘은 것 같다. 한 때 자주 드나들던 상도동의 어느 소리사 주인 할아버지께서 미군부대에서 막 흘러나온 것이라며 내게 보여준 것이 인연이 되어 무턱대고 인수하였던 진공관이다. 크기는 큰 물컵 정도로 매우 큰 송신기용 3극관으로 통상적인 이름은 211이고, 미군 군용 부품넘버로 VC4-C라고 적혀 있었다. 고압을 1KV나 걸어야 하니 전원트랜스와 출력트랜스 등 대부분의 부품이 일반 진공관앰프보다 크기와 용량이 달라 당시엔 부품 구하기가 어려워 제작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그만 20년 동안 잊고 살게 되었다. 저 큰 진공관에 불빛이 들어오고 전자가 움직이면 과연 어떤 소리가 날까 기대하며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지난 3월 어느날 집 가까운 골동품 오디오가게에 211 진공관앰프 부품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 보았다. 부품이라기 보다는 진공관만 없을 뿐 몇 가지 손만 보면 금방이라도 소리가 날 것 같은 낡은 완제품이었다. 주말을 기다려 이리저리 소켓과 배선을 손보고 전원부를 점검한 뒤 조심스레 가지고 있던 진공관을 끼우고 히터전압을 넣었다. 큰 관 주위로 붉은 빛이 휘돌며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플래이트에 전압을 가하고 볼륨을 올리자 진공관은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수줍은 소리를 토해 놓기 시작했다. 거칠고 설익은 소리도 잠시뿐이고 곧 바이올린의 현에서 송진가루가 떨어지는듯한 힘찬 소리가 나면서 비발디의 사계가 방안을 휘감았다. 3극관으로 유명한 300B 2A3 진공관과 비교하여 예쁘고 정교한 소리는 아니더라도 힘차고 박력이 넘치는 소리가 색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까지 작은 진공관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주황색 밝은 불빛은 어둠 속에서 앰프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함께 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몇 주를 기다려 대대적인 도색과 멋 내기 작업을 거쳐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할 수 있는 명품(?)으로 변신시켰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많은 앰프들을 물리치고 크기나 위용에서 소리까지 의젓하여 거실 가운데 자리를 잡게 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오랜 기다림과 설렘 속에서 태어난 아날로그 A급 증폭 오디오 기기는 지금은 내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있다.


요즈음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MP3로 음악을 듣고 헤드폰 소리에 묻혀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쉽게 음원을 구하여 저장할 수 있고 취급이 간단하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MP3를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MP3 음악이란 원래의 아날로그 연주 음을 디지털화하고 압축하는 과정에서 음을 잘게 짜르고 생략하고 압축하면서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많은 주파수 성분들이 날아가고 수많은 코딩과 필터기술이 가세하게 된다. 더구나 아날로그 LP판을 대신하고 있는 CD 역시 디지털 과정에서 압축만 덜 할 뿐 MP3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자연계는 아날로그로 되어있으나 인간의 기계는 자꾸 디지털화 되어 간다. 디지털 세상이 아날로그 세상을 대신하고 있지만 편리함과 섬세함과 노이즈 없는 기술 때문에 디지털기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음원은 디지털일지라도 아직은 최종단 스피커는 아날로그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05
년 대구MBC에서 제작된 [생명의 소리아날로그]라는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한 남우선PD는 생음악이 활어라면, LP가 생선회, CD는 통조림, MP3는 잘 말린 건포에 비유하였다. 실제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에서 공동실험한 결과 CD음악만 들려준 식물이 LP음악만 들려준 식물보다 성장호르몬이 40% 가까이 적게 나왔다고 하였다.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초저역과 초고역 주파수의 파동음 무엇인가가 인간이나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나는 과괌하게 주파수를 난도질 한 디지털 음보다는 아날로그 음을 더 좋아하고 소중히 여긴다. 비롯 LP판이 아닌 CD음일지라도 뜨겁게 달아오른 진공관을 통과하고 육중한 트랜스를 거치면서 좀 더 아날로그에 가까운 따뜻한 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인해 진공관 음을 더 사랑하고 있다.

만약 아날로그와 디지털 음에 대해서 비교설명을 하라고 한다면 아날로그 음이 바이올린 소리라면, 디지털 음은 피아노 소리라고 푼다 라고 말하겠다. 그 뜻은 피아노의 소리는 어린아이가 건반을 누르거나 음악가가 건반을 누르거나 똑 같은 음을 내어 준다. 그러나 바이올린의 소리는 음악가가 들려주는 소리가 다르고 어린아이가 켜는 소리가 다르다. 그리고 사이에 수많은 중간음과 기교가 있을 수 있다. 그만큼 아날로그 음원은 다루는 사람에 따라 아름다운 소리가 될 수 있고, 노이즈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소리든 자연의 소리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노이즈도 함께 더불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LP판이고 아날로그 오디오 기계이므로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진공관 앰프를 아끼고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 사회도 0 1로 표현되는 극과 극이 아니고 무수한 중간단계가 존재하듯이 이제는 LP판의 판 튀는 소리도 정감있게 들을 줄 알고 진공관앰프의 험도 신경 쓰지 않는 무딘 인간이 되고있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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