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과 방송콘텐츠진흥법

[조준상 칼럼] 종합편성채널과 방송콘텐츠진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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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성채널과 방송콘텐츠진흥법


‘조중동’이 그랬다. 신문발전기금, 지역신문발전기금을 통해 지원받는 신문은 정부를 비판할 수 없다고 악다구니를 써댔다. 신문법을 향해 ‘언론통제법’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랬던 그들이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는 길이 마련될 것처럼 보인다. 방송콘텐츠진흥법을 통해서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조중동’과 재벌, 특히 KT나 삼성과 같은 재벌 대기업은 종합편성채널이나 지상파방송을 소유해 ‘조중동 뉴스-재벌방송’을 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 한나라당의 날치기 통과시도가 상징하듯, 현 정권은 막무가내로 이를 현실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과 관련된 각종 제도 정비는 뒷전이다. 오로지, 조중동과 재벌 대기업을 짝을 지워 종합편성채널을 적어도 2개 이상 런칭하는 데 ‘올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콘텐츠진흥법이 지난 1월14일 한나라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의원 27명이 발의했다. ‘방송을 목적으로 제작되거나, 방송 외의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나 방송에 사용되는 콘텐츠’를 방송콘텐츠진흥기금을 통해 집중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원 대상에는 종합편성채널을 포함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방송영상독립제작사, IPTV사업의 콘텐츠사업자(CP)는 물론, 지상파방송도 포괄된다.

지원 항목은 전방위적이다. 공동 제작단지는 물론, 유통과 보존을 위한 장비 및 시설, 방송 신기술 적용을 위한 실험장비 및 시설, 콘텐츠의 재가공이나 변환을 위한 장비 및 시설 등은 물론, 콘텐츠 제작자금까지 지원한다. 여기에 드는 돈은 통신사업자의 전파사용료와 방송발전기금 등으로 조성되는 방송콘텐츠진흥기금으로 충당된다. 한 마디로 콘텐츠 제작시설과 제작비용이 정부 돈으로 지원된다는 얘기다.

경기침체와 광고시장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콘텐츠 사업자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법을 통해 누가 가장 큰 수혜를 받을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그리 반길 수만도 없다. 가장 큰 수혜자는 ‘조중동’이 진출하려는 종합편성채널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소규모 콘텐츠 사업자나 MSP(MSO+MPP)나 MPP와 같은 기존 대규모 유료방송사업자에게는 약간의 떡고물이 돌아갈 것이다.

KBS는 물론 MBC나 SBS와 같은 지상파방송이 이 기금을 통해 지원받을 꿈을 꾸고 있다면 아예 버리는 게 좋다. 수신료 받지 않으면 공영방송 아니라는 이 정권의 논리에 따르면, KBS는 이 기금에 손을 벌릴 수 없다. 정권이 원하는 사영화에 동의하지 않는 한 MBC에게 이 기금은 그림의 떡이다. 기금 지원 업무를 심의하게 될 방송콘텐츠심의위원회의 구성을 방송통신위와 정부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도록 돼 있는 상황에서,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SBS 정도가 이 기금에 군침을 흘릴 수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 정권이 종합편성채널 도입을 위해 막무가내로 쏟아내는 단순 무식한 거짓말이 바로 ‘지상파방송의 독과점’이란 신화다. SBS 역시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지상파방송 중에서 이 기금에 접근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아마도 현 정권이 원하는 케이블방송과 겸영하겠다고 나서는 지역 지상파방송 정도가 될 것이다.

그만큼 방송콘텐츠진흥법은 정부가 돈으로 방송판을 재편하는 핵심 수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정당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정권을 유지하고 장기집권하기 위해 마음에 안 드는 보도 내용은 악착같이 통제하려는 현 정권의 속성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이 법안이 콘텐츠 진흥만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통제의 독소조항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이 법안 제13조는, 방송통신위가 ‘보존가치가 높은 방송콘텐츠’라고 판단해 "해당 콘텐츠의 목록과 원본 또는 사본의 제출을 방송콘텐츠의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게 요청할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제출의 대상이 되는 방송콘텐츠는 현행 방송법 제60조 제2항처럼 ‘방송된 방송프로그램(예고방송 포함)의 원본 또는 사본’이 아니다. ‘목록과 원본 또는 사본’이다. 이는 편집 과정을 거쳐 시청자에게 방영된 콘텐츠만이 아니라 편집 과정 이전에 이 콘텐츠의 제작을 위해 취재한 일체의 내용을 지칭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마음에 안 드는 콘텐츠 내용에 대해서는 ‘취재수첩’까지 내놓으라고 할 수 있다는 근거조항이라는 얘기다.

필자가 보기에, 방송콘텐츠진흥법은 ‘조중동 뉴스-재벌방송’ 만들기 위해 정부 돈을 왕창 쏟아 부을 수 있도록 하는 통로의 성격이 강하다. 기타 콘텐츠 사업자에게 약간의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콘텐츠 내용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한 정권의 ‘안전장치’를 수용해야 한다. 조중동이 방송콘텐츠진흥법에 신문법에 퍼부은 것과 같은 악다구니를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