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
올해 초 오큘러스, HTC Vive 출시와 함께 시작된 가상현실(VR)에 대한 관심은 리우 올림픽에서도 이어져 개막식과 폐막식은 물론 주요 경기를 VR 영상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증강현실(AR) 기반의 ‘포켓몬 고’는 출시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VR을 체험하는 사용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기대감이 높아지는 반면 디스플레이 해상도의 한계, 어지러움이나 발열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1) 디스플레이 해상도
먼저, 스마트폰의 고도화와 함께 디스플레이의 해상도는 빠르게 향상돼 왔다. 하지만, VR 기기의 경우 디스플레이가 눈에 가깝게 있을 뿐 아니라 렌즈를 통해 확대된 영상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해상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준비돼 있다고 하더라도 낮은 해상도로 인해 화면 자체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진다면 VR로 고객을 사로잡기는 시작부터 어려울 수 있다. 지금까지 디스플레이 해상도가 향상돼 온 과정을 감안하면 디스플레이 해상도가 눈이 인지하지 못할 만큼 발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해상도와 함께 가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은 단시간 내 쉽지 않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 제조사 입장에서는 늘어나는 제작 비용을 감안해 충분한 물량이 보장돼야만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스마트폰 해상도와 같은 속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QHD에서 UHD로의 향상은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민감한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부분적으로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자연스러운 영상 처리를 통해 극복해갈 것으로 보인다.
(2) 어지러움과 발열 문제
어지러움이나 발열 문제는 상당 부분 프로세서의 성능에 기인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하나의 AP가 기존 PC의 CPU, GPU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다 보니 크기를 작게 하고 전력 소모량을 낮추는 장점은 있지만 개별 성능은 PC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오큘러스나 HTC Vive가 추천하는 PC 사양이 상당히 높은 편임을 감안하면 스마트폰을 가지고 VR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당장 그래픽 처리 능력만 비교해 보더라도 초당 처리할 수 있는 영상의 크기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현재 컴퓨팅 파워 수준에서 높은 화질의 3D VR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PC 기반의 VR 기기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GPU만 해도 30만 원이 넘고 전체 PC 가격이 200여만 원이 된다면 가격에 대한 부담감은 크다. 이에 대해 최근 VR에 특화된 CPU와 GPU가 개발되면서 가격이 하락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인다. AMD, NVIDIA, 인텔 등 관련 기업들은 저마다 VR용 부품 개발에 적극적인데, AMD는 CPU와 GPU를 일체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고, 인텔이나 NVIDIA는 자신들의 CPU, GPU가 적용된 기기를 직접 만들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기존 PC 부품 기업들은 VR을 다시 한 번 도약할 기회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VR 시장을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3) 무게, 디자인 및 활용성
VR 기기는 대부분 HMD 형태다. 이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보다 정밀하게 감지하고, 몰입감 높은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모습은 크고 착용하기 불편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착용이 가능하기도 하다. 게다가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모습 때문에 평상시 착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안경의 발전 모습을 생각해보면 VR 기기도 고성능화, 경량화되며 상당한 발전을 해 갈 것이다. 또한, 현재 적용되고 있는 OLED 디스플레이는 휘어지고 구부러지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그리고 상황에 따라 투명하거나 불투명하게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가변형의 디스플레이로 진화가 가능하다. 당장은 구현되기 어렵겠지만 필요에 따라 선글라스도 되고 VR이나 AR로도 전환 가능한 기기의 형태로도 발전해 갈 것으로 보인다.
(4) 콘텐츠 부족
최근 360도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VR 영상 제작이 단순해졌다. 모든 VR 콘텐츠를 360도 카메라로 만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여행지에서 액션캠의 활용으로 상당한 몰입감을 제공하는 콘텐츠가 쉽게 만들어지고 있다. 게다가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통한 공유도 가능해 이미 많은 360도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360도 카메라만으로도 가치 제공이 가능한 분야를 중심으로 성장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뮤지컬이나 콘서트의 경우는 컴퓨터로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360도 카메라를 통해서 촬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며, 이것만으로도 생동감 있는 영상 제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상의 3차원 공간에서 이동 등 활동이 가능한 제대로 된 3D VR용 콘텐츠는 기존 2D 이미지에 기반을 둔 콘텐츠 대비 만만치 않은 제작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현재로써는 주로 3D 게임, 테마파크, 시연용 등 제한된 범위에 머무르고 있다. 앞으로 이 부분에서 얼마나 양질의 콘텐츠가 저비용으로 간편하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VR 시장의 성장이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
VR만의 가치를 높일 눈여겨볼 시도들
앞서 본 바와 같이 몰입감 높고 불편하지 않은 VR이 구현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의 상당 부분은 컴퓨팅 파워, 디스플레이 해상도, 반응 속도, 경량화 등과 같이 계속되는 성능 향상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문제, 즉 얼마나 빨리 극복될 수 있느냐는 시간 문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발전만으로는 극복되기 어려운 문제, 혹은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방법의 시도, VR과 AR이 진정한 3D 가상 공간으로 펼쳐지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어지러움을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상도와 반응 속도 이상의 기술이 필요하며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정교하게 맞물리기 위해서는 현실 공간과 현실에 존재하는 실물에 대한 섬세한 인식과 이를 3D 가상 공간상에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VR 세계로 더 가까이 가기위해 시도되고 있는 주목해볼 변화를 살펴보자.
(1) 영상 구현 방식의 변화 가능성
장시간 착용 시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입체 영상을 구현하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 사용자들은 모든 사물을 입체적으로 받아들인다. 원근 즉 3차원은 두 눈 사이의 거리(약 6.5cm)에서 받아들이는 서로 다른 이미지가 하나로 보이면서 인식되는데, 이때 초점 거리와 수렴 거리가 일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HMD에서는 초점 거리는 눈과 디스플레이 사이의 거리로 고정돼 있는데, 수렴 거리가 변화되며 어지러움을 유발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광학 기술의 패러다임 변화 가능성이 엿보이는데, 그중 하나는 라이트 필드(Light Field) 기술이다. 이는 각각의 점에서 주변 사물에서 반사되는 모든 빛을 인식해, 평면 정보가 아닌 공간 정보로 받아들인다. 라이트로라는 업체는 이 기술을 활용해 촬영 후 초점과 심도 조절이 가능한 카메라인 라이트로일룸을 출시한 바 있고, 최근에는 가상 공간에서 자유도를 줄 수 있는 VR용 카메라를 개발 중이다. 한편 구글과 알리바바의 투자를 받아 화제가 된 매직리프도 라이트 필드를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2) 현실 공간과 실물의 가상화
‘포켓몬 고’의 경우, 각 지역의 지형과 랜드마크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수많은 사용자는 그 곳에서 카메라를 다양한 각도로 계속 비춰가면서 게임을 즐긴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영상 정보가 축적된다면 어떻게 될까? 카메라나 센서를 통해 공간에 대한 정보를 인식하고 이를 데이터화한다면, 스트리트뷰를 더욱 실감 나게 바꿀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이를 그대로 VR 콘텐츠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기업에서 이러한 현실 공간과 실물을 가상화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MS의 홀로렌즈는 오큘러스나 HTC Vive 같은 HMD 형태지만 앞이 막혀있지 않고 투명하기 때문에 현실 환경을 배경으로 가상의 이미지를 홀로그램 형태로 볼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보여준 시연 영상에서는 사용자의 움직임이나 위치는 물론이고 주변 공간의 모양이나 거리를 상당히 정확하게 인식하는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기술이 더 발전하면 영화 <아이언맨>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나오던 것처럼 공중에 화면을 여러 개 띄워놓고 작업을 할 수도 있고, <킹스맨>에서와 같은 가상 회의 모습도 가능할지 모른다.
홀로그램과 유사한 접근을 하는 기업은 MS 외에도 스타트업인 매직리프가 있다. 학생들이 가상의 해마를 눈앞에서 보고, 사무실에 태양계의 움직임이 펼쳐지거나 체육관 바닥에서 거대한 가상 고래가 튀어나와 허공으로 솟구치는 등 AR에 기반을 둔 데모 영상을 보여준 바 있는데, 비록 접할 수 있는 시제품이나 개발자 버전의 기기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기술력과 콘텐츠 제작 능력의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는 유니콘 기업이다. 구글, 알리바바, 퀄컴이 투자에 참여했고 VR 관련 SF 소설에서 선구자적 위치를 인정받고 있는 닐 스티븐슨이나 영화 <반지의 제왕>의 감독인 피터 잭슨도 함께 일하고 있어 AR 콘텐츠의 수준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구글과 인텔은 공간의 인식을 통해 AR을 고도화하면서 AR과 VR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개발자 콘퍼런스를 통해 구글은 가상 공간 속에 현실 공간으로 가는 통로를 만들기도 하고, 현실 속에 가상의 괴물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으며, 인텔은 AR와 VR을 아우르는 융합 현실(Merged Reality, MR)을 소개하며 프로젝트 얼로이를 공개했다. 얼로이는 VR 헤드셋이지만, 카메라 솔루션을 접목해 사용자 앞의 실제 사물을 인식해 가상 공간으로 가져오기도 하고, 컨트롤러가 아닌 손을 직접 이용한 조작이 가능하도록 했다.
VR의 기회를 점검해보고 준비할 시점
VR이 통합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가상 공간을 만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한 공간과 사용자를 인식하는 기술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핵심 경쟁 요소가 될 수 있다. 아울러 VR은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과의 융합으로 그 파급력을 더 키워갈 것이다. 몇몇 콘텐츠가 단기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은 VR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누가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이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구글, 애플, 페이스북, MS 등 글로벌 기업들은 미래 유망한 영역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융합을 통한 성장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사용자들이 컴퓨터나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보았다’고 기억한다면 VR을 통해서는 직접 ‘겪은 것’처럼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TV를 통해 멋진 센 강의 풍경을 보면서 감탄하더라도, 이후에 체험으로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직접 걸어본 한강의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책을 읽고 영화나 TV를 보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도 하고 이를 기억하지만, VR은 이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력한 ‘체험’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그런 VR의 세계가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불확실한 면이 많고, 해결 과제도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이 앞으로 펼쳐질 VR에서의 기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점검해보고 준비할 적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