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본이 가져온 경제위기에 대한 첫 대중시위
[가디언] 아테네 중산층 시위대 무장, 끝나지 않는 혼돈
새사연 통역번역 모임
신화와 관광의 나라 그리스에서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위정자들의 부패와 생활고에 시달리던 민중들의 불만은 지난 6일 15세 소년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과격하게 표출되고 있다.
특히 심각한 청년실업에 고통 받던 젊은이들이 선두에서 시위를 이끌고 있다. 그리스가 겪고 있는 경기침체와 실업난, 특히 우리의 88만원 세대와 같은 700유로 세대의 거리진출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아가 전 세계 민중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시위는 금융자본이 가져온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다른 나라 민중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화두를 던진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Guardian) 역시 “아테네의 시위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경기 한파에 대한 첫 대중시위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14일자 ‘가디언’ 헬레나 스미스 기자는 그리스 시위의 상세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편집자 주>
헬레나 스미스(Helena Smith)는 지난 20년 동안 가디언의 그리스 소식을 담당해왔다. 무엇이 그리스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는지 스미스 기자가 취재했다.
아테네는 지금 한마디로 아비귀환이다. 돌이 날아다니고, 건물과 자동차는 불타고, 깨진 화염병 파편이 도로에 나뒹굴고 있다. 1974년 군사 독재정권의 몰락 이후에는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다. 그리스에 온 지 22년이 되어가지만, 민중들의 눈 속에서 이처럼 가득 찬 분노와 절망을 본 것은 처음이다.
지금 그리스에서는 공공질서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땅 그리스를 휩쓸고 있는 폭력의 근본 원인, 뿌리 깊은 병폐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 사회의 상층부가 아니라 기층민중,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서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고 성장했지만, 절망적이다 못해 부끄러울 정도의 실업률에 고통 받고 있다. (18세 이상 25세 이하 젊은이 중 70%) 그리스의 실업률은 이달에 7.4%로 급등했다.
만약 700유로(역주: 현재 환율로 약 126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만 있다면, 그 간 자신이 애써 획득한 자격증 같은 것은 개의치 않고 그 일자리에 지원한다. (그리스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700유로 세대라고 부른다) 수 개 국어에 능통한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리조트에서 여행객을 상대로 음식 서빙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스인 5명 중 1명은 빈곤층이다. 이제까지 그리스 사회의 병폐를 직접 체감하지 못했던 사람들마저 보수 정권의 고위 관리들이 자행하는 부패에 점점 더 염증을 내고 절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련의 부패 스캔들로 4명의 장관이 물러나야 했다.
과열 폭력 양상을 띠고 있는 시위는 그리스를 마비시키고 있다. 아마도 이번 시위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승리(유럽 전역에서 그리스를 따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에 고무되었으며, 모든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승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치 불이 번져나가는 것과 같아요.” 관념적인 수학책을 덮고, 지난주 아테네 거리로 뛰어나온 야니스 야트라키스(Yiannis Yiatrakis)는 말한다. “우리의 분노는 너무 크고, 너무 많아요. 아주 강력한 정부만이 이번 소요를 중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토요일 아테네 변두리인 엑사치아(Exarchia) 지역 중심가에서 다혈질의 경찰이 쏜 하나의 총성, 그리고 한 아이의 죽음이었다. 그전까지 대부분의 그리스 인들은 그저 TV앞에 앉아서 사태를 관망하거나 지역식당에서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거리 시위에 가담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부 지방 출신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진 10대 소년, 알렉산드로스 그리고로포울로스(Alexandros Grigoropoulos)의 죽음은 지옥 불을 지피는 성냥처럼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중산층 출신 자녀들(대부분 영국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지만 뇌물과 연고주의, 족벌주의로 굴러가는 그리스에 돌아와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이 시위에 가담하면서 양상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중산층 젊은이의 가담으로 이번 시위가 시대적 요구의 소산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자명해졌다. 젊은이들의 시위는 억압된 좌절과 분노의 표출뿐만 아니라 추문으로 점철된 보수주의 정권 내각이 지난 5년 동안 권력을 잡으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린 것에 대한 극도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즉자적으로 시작했던 이번 시위가 조직적인 양상을 가진 시민 소요로 변화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분명한 사실은 카라만리스 정부의 통제력은 바닥을 쳤다는 점이다. 카라만리스 정부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서는 안 될 처신들의 사례만 남겼을 뿐이다.
앞으로도 몇 주 동안 매일 시위가 예정되어 있으며, 그리스 젊은이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을 향해 발사되고 있는 최루가스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보다는 그들의 분노를 심화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