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교묘한 눈속임

[사설]한나라당의 교묘한 눈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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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비이성적이고 개탄스러운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벌어지고 있다. 아니 자행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듯하다. 지난 5일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회’가 발의한 언론 관련 7개 법률 개정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7개 법률 개정안은 △방송법 △신문법 △언론중재법 △인터넷 멀티미디어법 △전파법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의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이다. 개정안이 지향하는 목표는 한마디로 신문과 재벌이 지상파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개정안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신문과 재벌이 지상파방송을 포함한 모든 방송사의 지배주주가 되어 여론을 독점할 뿐만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눈, 귀를 막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신문은 조선, 중앙, 동아로 국한된다. 이 신문들의 미국 수입 소 광우병에 대한 보도 태도변화, 정부정책에 대한 보도행태를 보면 방송마저 장악할 경우 잘못된 여론형성에 이용될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언론법 개정을 ‘미디어 산업 활성화’로 눈속임하고 있다. 재벌의 자본으로 방송 콘텐츠 제작을 활성화하고 이에 따라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논리에는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다. 현재 케이블TV를 통해 재벌과 메이저 신문들은 보도기능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법률안에서도 충분히 대형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송할 수 있다. 단지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보도 프로그램만 없을 뿐이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이를 부추긴 재벌, 신문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가장 시청률이 높고, 영향력이 큰 지상파방송에 진입해야만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여론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언론법 개정을 ‘언론장악 7대 개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디어행동 등 단체들은 이번 법 개정이 ‘재벌방송, 조중동 방송을 위한 수순이다. 한나라당은 수구신문과 재벌이 결합하는 속내를 공개한 것이고, 재벌방송은 재벌을 감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수구족벌 조중동 방송은 가난한 이들의 아픔과 고통은 말하지 않는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터키의 언론을 보자. 헌법에서는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국가의 통합’을 저해하는 언론보도를 금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사실상의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언론이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할 경우 일시적으로 해당 언론사 활동을 중단시키기도 한다. 또한 다수의 언론이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정부는 각종 재정적 특혜를 제공하여 정언(正言) 유착관계를 유지해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부와 재벌의 유착관계로 언론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등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따라서 사실보도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사주의 상업적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폭압적인 군사독재 정권시절도 꿋꿋이 견뎌내면서 언론자유와 방송독립을 쟁취해 왔다. 언론 본연의 기능인 사실보도와 비판기능을 수행해왔지만, 때로는 직간접적으로 정권과 자본에 휘둘리는 안타까운 역사가 더 길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깨어있는 언론인들의 피나는 노력과 투쟁으로 한 발짝씩 독립된 언론으로서의 위상을 잡아왔다. 이번에 발의된 한나라당의 7대 개악법은 방송마저 재벌과 친정권 신문에 팔아넘김으로써 정부에 대한 비판기능을 송두리째 묻을 작정이다. 우리국민이 소중하게 가꾸어 온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려고 한다.
누구든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한다. 설령 언론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의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론의 기능을 말살하는 형태로 보복적 행위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현대사회와 같이 다원화되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서 돌아가는 사회에서 언론은 더욱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가진다. 때론 진정한 여론 형성보다는 강자를 위한 여론 조작에 동원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언론인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뚜렷해지고, 사회적 조정역할에 충실할 때 언론은 더욱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언론이 언론다울 때 그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고, 빛이 난다.